벌레와 비둘기세일즈맨은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됐다. 절망과 굶주림으로 결국 죽은 사내. 누이는 그를 집게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의 가족은 아무 일 없는듯 살아간다. (카프카의 ‘변신’).
소리 못지르게 나무토막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입을 막아버리는 방성구(防聲具)를 한 채 먹방(깜깜한 방)에 갇혔다.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견디지 못해 방뇨해버린 사내. 입에선 끊임없이 개처럼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질퍽하게 오줌을 싸놓은 옷, 손을 뒤로 묶여 팔이 없는 사내는 그 치욕감으로 끝없이 작아지고 싶었다.
놀랍게도 그는 벌레로 변해갔다. 나방의 애벌레처럼 몸이 물렁물렁해졌다. 의식은 여전한 벌레. 이보다 안전하고 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형태의 벌레가 되어버린 불유쾌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1977년 가을 김영현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다. 1년 반동안의 수형생활. 그리고 석방되자마자 군대에 끌려갔다.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자 다시 보안대 지하실에서 보름동안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 때 기억이 의식의 ‘폐쇄회로’가 됐다. ‘마치 뻑뻑한 기름통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던’그 기억은 ‘오뉴월 개구리처럼 몇번 패대기처지고, 까무러치고’ ‘몇 차례 수도공사(물고문)로 터져버릴 것 같은 폐와 담요를 씌우고 차고 때리는 그 무서운 고통’(소설‘내 마음의 망명정부’에서)으로 끝없이 되살아나거나, ‘이상하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작자가 없다니/…/불안, 초조, 헛구역질, 외로움/ 혼자 앓고 있는 걸까’(시‘후유증’에서)라고 의아해하는 후유증으로 나타난다. 때론 ‘온몸에 힘을 빼고 의지를 가능한 한 죽이는’고통을 건너가는 방법으로 이용한다.
그는 흰 담 위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보곤 했다. 그 비둘기는 지리산 빨치산으로 40년 가까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노인의 ‘비둘기’이다. 눈부시게 흰 날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못다 이룬 사랑과 못다 이룬 청춘과 못다 이룬 혁명의 꿈.
공룡의 시대
그러나 어느날 그는 혁명, 변혁, 운동이 모두 낡은 낱말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해체의 아침’을 맞았다. 철을 단련하듯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이 ‘흔적’이 돼버린 날. 그는 곤혹스럽고 고통스런 화두인 ‘그리움’과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움과 깊은 피곤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보았다. ‘먼 옛날 1억2,000만년동안이나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다 갑자기 멸망하고 만 공룡을.’(소설 ‘그해 겨울로 날아간 철새’에서) 현준만(문학평론가)은 “그 공룡은 비대해진 비인간적인 억압구조가 영구불변이 아니라는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했다.
신이 죽고, 이성이 죽은 자리에 인터넷과 영어, 진리의 상대주의자, 다원주의가 지배하면서 희랍 올림푸스의 신들처럼 욕망만이 횡행하는 시대. 그는 태백의 한 수도원을 찾아갔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길이 끝나는 곳.
태백 예수원, 그 새로운 길찾기
예수원 가는 길은 6년 전이나 같다. 태백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20분을 달리면 길 오른편에 ‘예수원’이란 작은 푯말이 굳이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은채 서 있다.
그러나 태백에서는 그곳 원장인, 이름을 대천덕으로 바꾼 성공회 루빈 아처 토리(82)신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35년전 이곳에 천막을 치고 선교를 시작한 그는 이제 한쪽 다리가 불편해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그림(설계)을 그리면 신부는 돌을 날라 지었다는 산비탈 갈대 지붕과 너와 지붕의 건물. 누구나 쉴 수 있고, 누구나 원하면 생활하는 공간이다. 70여명의 지원생, 수련생, 정회원들이 ‘노동하는 곳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는 마음으로 지금 살고 있다.
저녁이면 노동으로 기도한 사람들이 부드럽고 밝은 얼굴로 모여 잡곡 밥을 먹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 영혼의 상처에서 터져나오는 음성으로 기도한다.
한 시대가 지나가고 믿음과 구원과 전망이 없어진 밤 길로 예수원을 찾아가는 화가 재섭에게는 상처만 가득 했다. 아이의 죽음과 아내의 가출, 현상적이거나 시대적 요구가 아닌 예술의 본질과 마주하고 싶었던 욕구의 좌절. 그 늪에서 그는 인도를 떠올렸다. ‘아마도 무언가 발가벗은 듯한 근원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친 강아지가 숨어 상처를 핥듯 내적 기도와 자기 성찰을 통해 원기를 찾아 이성과 역사에 대한 환멸과 미움을 그리움으로 환원하기.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야말로 그 ‘고통과 구도의 과정’이었다. 실제는 돌로 쌓은 벽이어서 그릴 수도 없는 ‘광야의 예수’벽화를 소설에서 그리면서 김영현이 이곳을 기억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신이 죽은, 공룡이 어슬렁거리는 시대에 인간성 회복의 길찾기였다. 소설 ‘내 마음의 서부’에서 박목사는 자신이 일군 대관령 작은 터를 이야기했다.
지배도 감시도 없는 완전한 자유의 땅. 소설 ‘개구리’의 친구는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종족을 광야로 이끌고 나왔던 ‘가나안 프로젝트’처럼 공산사회나 완전복지국가라고 했다. 아니면 지금의 이 예수원. ‘내 마음의 서부’에서 정민은 ‘낭만주의적 공상’이라고 비난했다.
김영현은 인간의 욕망 구조에서는 한순간 부서질 수 있는 종교적 공동체보다는 농경사회 공동체 아니면 3대가 함께 사는 가족공동체, 욕망보다는 이성을 회복하는 대안운동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재섭도 예수원을 떠나면서 아내의 소중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 존재를 걸 수 있었던 절대적인 가치가 사라진 현실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예수원을 다시 다녀오는 저녁길에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처음 그가 그곳을 찾아 갈 때처럼.
■논쟁의 중심, 김영현
진보적 소설 쓰기로 90년대 문학논쟁 주도
해체와 논쟁과 모색. 1990년은 이런 시대였다. 동서 이데올로기의 붕괴, 독일 통일이 가져온 혼란과 공황(恐慌). 진보주의자들은 갑자기 지향점을 잃은듯 비틀거리며 내부 분열했고, 문학에서도 역사와 자유를 놓고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부딪쳤다.
김영현은 때론 그 대상으로, 때론 자신이 논객으로 그 중심에 섰다. 어쩌면 이런 논쟁은 이분법을 강요하고, 이분법으로 자신의 지켜온 그들에게 김영현 문학이 지닌 ‘진보성과 문학성’에 대한 공격과 평가야말로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는 하나의 대안이었을 것이다.
논쟁은 그 해 봄부터 시작됐다. 젊은 비평가 권성우와 정남영. 자유주의 진영의 권성우는 ‘베를린, 전노협, 그리고 김영현’(문학과사회)에서 김영현 문학을 “진보적 지식인의 마음의 무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일상사의 미세한 풍경 속에 깊숙이 저장하여 자연스럽게 형상화한다”며 진보문학의 문학성을 평가했다.
그러자 정남영이 ‘노동문학’복간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김영현 소설은 남한문예운동의 미래인가 과거인가. 결론은 과거였다. 노동해방의 이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구현한 위대한 노동 소설을 창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청년작가위원장인 김영현이 자신이 직접 나서 민족문학 평단 내부를 전면 비판했다. “비평이 창작품과 독자대중과의 긴장보다는 타 정파와의 긴장에 열을 더 올리는 식으로 전락했다”며 문학을 이데아적 개념으로 재단하는 교조적 태도와 오만을 비판했다.
1980년대 후반 노동해방문학의 지평을 연 시인 박노해에게도 화살을 쏘았다. 그의 시에 나타난 자기 과시, 구체성 없는 구호, 소영웅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런 비판을 소시민적, 자유주의적 태도로 몰아붙이거나, 문학을 잘못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평론가야말로 문학을 질식시키는 ‘종교적’태도라고 했다.
그 해 김영현은 이문열과도 논쟁(‘오늘의 소설’하반기호)을 벌였다. “문학이 운동성을 띠면 원론적 이야기만 반복해 본래의 문학을 잃어버린다”는 이문열의 지적에 그는 “상업문학, 예술적 형상화에 실패한 거짓문학을 청산하고 당대의 아픔을 진지하게 형상화 해내는 참된 문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주의로부터는 급진과 운동권으로, 같은 진보주의로부터는 자유주의자로 비판받은 김영현은 이런 논쟁들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인간의 삶이라는 사장 구체적인 현실, 그것을 진지하게 형상화하는 참된 문학, 그 작업을 통해 인간으로서 자신과 타인의 사랑과 역사의 전진이란 세가지 믿음을 지키는 것.
상업적 욕망이 지배하는 2000년의 공룡시대에 칸트의 이성을 찾는 대안운동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소설 ‘개구리’의 주인공은 그것을 ‘가나안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대현기자
▥ 김영현 연보
▲1955년 경남 창녕 출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84년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창비신작소설집)로 데뷔 ▲1990년 ‘저 깊푸른 강’으로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와 장편소설 ‘풋사랑’, 시집‘겨울바다’ ‘남해엽서’ ▲실천문학사 대표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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