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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극단 산울림 '이자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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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극단 산울림 '이자의 세월'

입력
2000.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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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아 전무의 상태로 전락해 버린 어떤 여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사이사이에 여인네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이 틈입한다. 극단 산울림의 ‘이자의 세월’.한 여인의 외면과 내면, 또는 현실과 환상(또는 악몽)이 공존하는 무대다.

미쳐버린 이자가 환자복 차림에 가짜 아기를 업고 얼르며 팩 소주를 마신다. 동시에 무대 한켠에는 한 여인이 나체로 서 있다. 배반감과 복수심에 아이를 떨구고, 껍데기만 남은 이자다. 미친 이자의 내면이다.

여인의 한(恨), 그 처절함이 우선 무대 가득 밀려든다. 중절수술로 아이를 뗐지만, 그녀는 넋이 빠지고 만다. 그것은 결국 남자에 대한 복수였지만, 아이에 대한 살인이라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를, 태아를 가위로 찔러 죽이는 그녀. 바로 옆의 내면은 인간이라기 보다 나무 등걸같은 여인의 다 벗은 몸, 인간의 육체 속에 내재한 식물성을 구현해 보이는 벗은 몸이다. 핀 조명에 고정돼 마치 채집된 곤충처럼 움직임이 박탈된 그녀의 몸은 서글픈 나체다.

극은 요즘 또 다른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여배우의 전라 출연. 연출자 박근형으로서는 첫 전라 연출. 한국 소극장 연극의 전범으로 자부하는 극장 산울림이 개관 31년만에 첫 시도하는 전라 출연. 눈부신 핀 조명(모두 16개) 아래의 전라 장면은 한국연극사 처음이다.

아주 가끔, 벗은 몸 보러 오는 관객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자에게 극은 실망만을 되돌려줄 뿐.

무대는 그녀가 견뎌낸 시간들의 총합체다. 한국 여인들에게 강요된 인종의 시간이 현재의 사건들과 나란히 천연덕스레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합쳐져 이자(李子)의 세월을 만든다. 그 시간은 한국 여성의 가려진 반쪽 진실이다.

실성한 여인이 품은 한을 앙칼지게 보여주는 천정하, ‘무화과꽃’ 등에서의 이유있는 나신을 다시 씩씩하게 드러낸 김가인, 남자의 의뭉끼와 바람끼를 호탕하게 연기하는 최정우 등 배우들의 호흡만으로도 산울림소극장은 벌써 꽉 찬다.

‘오늘의 한국 연극전’을 기획, 30대 연출가들에게 명무대의 기회를 준 산울림극장 대표 임영웅씨의 철두철미한 불간섭주의도 빠뜨려선 안 될 힘이다. 30일까지 산울림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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