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풍자의 계절. 간담 서늘한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으로 짜증나는 무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갤러리 사비나가 여름 특별기획전으로 마련한 ‘기발한 상상력_포복절도’전.
후텁지근한 여름에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기획부터 우선 반은 성공한 셈이다. 물론 남 웃기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법. 짜증만 더 할 작품도 더러 있지만, 미술가들의 번뜩이는 재치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화랑이 한층 친근하게 다가올 법한 전시이다.
초대 작가들은 구본주, 성동훈, 박불똥, 이흥덕 등 16명. 4일부터 26일까지 조각 7점, 회화 13점, 비디오 1점 등 전시한다. 신작 위주로 짜여졌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웃음을 머금게 하는 구작도 몇점 포함됐다.
조각가 성동훈의 ‘조 때문에 죽은 소’는 철과 흙을 이용, 남성의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비행기 발진기 위엔 뒤집혀 누워 있는 소. 뼈만 앙상하게 남아 거의 죽어가는 지경이지만, 거대한 성기 만이 맹렬하게 요동친다.
죽음 직전까지 퍼득거리는 그것은 악착같이 발기하는 욕망의 편집증을 드러내면서 웃음과 함께 씁쓸한 여운을 던져준다.
냄비와 알루미늄 폐품으로 만든 이봉수의 조각 ‘왕입니다요’는 권위적 인간에 대한 조롱이다. 머리에 감투랍시고 하나 쓰면 왕이라고 으스대는 왕자병 환자들. 작가는 그들의 형상을 맘껏 찌그러뜨려 표현해 인품이나 능력은 보잘 것 없는 기형적 인간이라고 비웃는다.
이흥덕의 1997년작 ‘사춘기’는 여전히 신선하다. 음란서적을 읽다가 들킨 순간, 모르는 척 뒤를 경계하는 소녀의 곁눈질과, 이를 지켜보는 개의 탐욕스런 표정이 어울려 미묘한 긴장을 낳는다.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뜬 소녀의 심리상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남성의 욕망을 꼬집는 작품. 박불똥의 만화 같은 아크릴화 ‘포복절도’에도 현대미술에 대한 신랄한 야유가 담겼다.
갤러리 사비나의 이홍원 큐레이터는 “성, 정치, 일상을 가볍게 꼬집는 작품들”이라며 “누구나 공감할 법한 시원한 웃음을 통해 미술과 관람자들의 거리를 한층 꼽힐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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