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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가족/ 반찬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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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가족/ 반찬시집살이

입력
2000.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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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주모 피우느라 용돈과 밥상에 소홀하다고, 어머니가 반찬시집살이 시키시는 게 아니냐!”고 묻는 며느리들이 의외로 많다. 그 이유는 시부모님이 갈수록 입이 고급스러워지는지 질기다, 맛없다, 반찬투정하는 듯, 맛있고 비싼 것만 바라시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르신의 상황을 미처 알지 못해서 가지는 오해이기 쉽다.나이가 들면서 신체기관들의 기능이 약화하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오감 중 미각과 후각의 감퇴가 바로 그 예이다. 이미 중년기부터 혀의 오톨도톨한 돌기인 ‘맛봉오리’나 후각돌기의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맛을 감지하는 감각이 둔해진다. 맛의 구별능력도 저하되고 맛의 강도에 대한 느낌도 약해지므로 노인기에 이르면 음식 맛이 전과 같지 아니하다. 예컨대 예전에는 참기름 두방울에서 느낀 고소함을 이젠 세 방울이 돼야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노인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경제적 이유도 있겠으나 더 심각한 이유를 들라면 이 음식이 저 음식 같고, 저 음식이 이 음식 같아서 특별히 더 맛있고 좋은 것이 뚜렷하지 않다보니 그저 아무 것으로나 허기를 채우고 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각이 아직 정상인 젊은 세대가 섞여 살면서 고루 균형을 갖춘 식사를 챙겨 드리지 않으면 노인의 영양실조는 불가피하게 된다. 치아부실이나 위에서의 염산 등 소화액 분비 감소 역시 노인이 예전과 달리 보다 부드럽고 연한 것을 찾게되는 이유가 된다.

이렇듯 인간이 늙어가는 자연스런 조짐들을 알게 된 며느리들은 다시는 ‘반찬시집살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신 손이 더 가서 번거롭지만, 시금치나물을 두 접시에 나누어 담는 이른바 며느리의 어르신 배려를 시작한다. “우리 건 데쳤고, 부모님 건 조금 더 끓였어요”라는 말 속에, 장차 며느리 자신들의 현실을 미리 앞당겨 이해하는 지혜를 담아낸다.

폭 삶아 누래진 부모님용 시금치야말로, 비록 비타민C가 다소 손실됐어도, 며느리가 풀 수 있는 고부오해와 갈등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어찌 시금치뿐이랴.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할 때, 어르신과 함께 하는 생활 곳곳에, 관심과 배려로 폭 삶아져야 할, 제 이 제 삼의 시금치들이 즐비하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02-523-4203) 전문상담가·노년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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