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실시된 멕시코 대선에서 승리한 빈센테 폭스 당선자는 71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멕시코 정치사(史)만큼이나 다양하고, 극적인 인생역정을 겪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대선기간 동안 멕시코 젊인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브레이크없이 승승장구한 인생 성공담이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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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대선 野 승리 71년만에 정권교체
폭스 "내 생일날 생애 최고의 선물"
국민행동당은 어떤당
1당 장기집권 염증 평화적 '선거혁명'
'6년주기 경제위기' 극복할까
"정부 간섭없었던 공명선거"
1942년 멕시코시티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폭스는 가족이 과나화토주로 이주하는 바람에 어린시절을 농장에서 보냈다. 그는 멕시코시티의 사립명문 이베로아메리카대학을 졸업한뒤 미 하버드대학에서 기업경영학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친뒤 그가 택한 첫 직장은 멕시코 코카콜라사의 영업사원. 폭스는 이곳에서 뛰어난 영업 및 고객관리 능력을 발휘, 승진을 거듭해 이사를 거쳐 30대 중반에 멕시코와 중부 아메리카를 총괄하는 사장에 오르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기업에서의 경험은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1987년 국민행동당(PAN)에 입당, 정치에 첫 발을 디딘 폭스는 다음해 과나화토주 연방하원 의원에 진출했으며, 1995년 과나화토주 민선 주지사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주지사로서의 치적은 그의 ‘대통령 꿈’실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임 5년 동안 수출자유지역을 설치, 막대한 외자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경제발전 드라이브로 낙후한 주 경제를 살리고,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로 인한 치안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멕시코 31개 주중 가난한 곳으로 분류됐던 과나화토주는 지금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지방으로 꼽히고 있다.
195㎝의 장신인 폭스는 부드러운 인상에 침착한 언변을 구사하며 청바지를 즐겨하는 등 서민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평이다. 대선 초반전만하더라도
그는 여론조사에서 집권당의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 후보에게 8%포인트 이상 뒤졌으나 1차 TV토론에서 풍부한 경제지식과 논리적인 언변으로 라바스티다를 몰아부쳐 역전에 성공했다. 선거막판 집권당이 그가 외국에서 선거자금을 동원했다고 폭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폭스는 선거유세장에 청바지와 가죽부츠를 신고 말을 탄채 등장하는 등 농민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서려고 애썼다.
그는 멕시코 북부에 450㏊에 달하는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소와 체소 등을 미국 유럽 등지로 수출하고있다. 클래식 음악감상과 독서가 취미인 폭스는 부인 릴리안 델 라 콘차 여사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2일 실시된 멕시코 대선에서 만년 야당인 국민행동당이 승리하자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서 대규모 축하집회가 열리는 등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천명의 지지자들은 이날 시내 중심가인 천사의 탑 광장 부근에 모여 ‘폭스’를 연호하며 밤새도록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택시운전사인 알프레도 헤수스(56)는 “멕시코 국민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국민들은 집권당의 장기독재와 부정부패, 빈부격차를 싫어하는데다 변화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폭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비센테 폭스 대통령 당선자는 멕시코시티 중심가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참석, “오늘은 변화를 바라는 멕시코 국민들이 승리한 날”이라며 “71년만에 이룬 평화적 정권교체를 발판삼아 위대한 멕시코 건설에 힘을 합치자”고 역설했다.
그는 또 “선거부정 의혹이 없도록 투·개표 절차관리에 최선을 다한 현정부와 집권당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도 중앙선관위의 발표 직후 폭스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한 뒤 “공명선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며 이번 선거는 멕시코 민주주의의 성숙을 전세계에 알린 쾌거”라고 치하했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집권 제도혁명당(PRI)은 보수세력의 퇴진과 함께 강력한 당내 개혁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PRI의 전신인 국가혁명당(PNR)은 1929년 당시 실력자인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 장군이 멕시코 혁명세대중 자신의 세력이 정권을 이어받도록 하기 위해 만든 당.
이후 PNR는 국가당 또는 멕시코 혁명당으로 불려오다 빨간색과 흰색, 녹색 등 멕시코 국기와 똑같은 3색의 당기를 가진 PRI로 정착됐다.
창당 이래 지금까지 PRI의 독주가 가능했던 것은 노동자와 농민, 직업인, 군부등 사회 각 분야를 망라하는 조직을 만든 뒤 혁명과업 계승과 국가의 공식 당을 기치로 조합주의(코포라티즘)적 통치를 펼쳐 왔기 때문.
소유·분배구조의 왜곡과 빈부 격차의 심화로 나타나는 멕시코식 경제성장의 문제점과 가부장적 ‘대통령주의’에 대한 집권당내 일부 세력 및 야당의 반발, 부정부패와 경제난 등 장기집권의 폐해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1990년대 들어 부각되면서 집권 PRI의 항로는 순탄하지 못했다.
1995년 대선 후보로 나선 에르네스토 세디요 당시 교육장관은 잇단 정치인 암살과 치아파스주 농민 무장반란 등으로 야기된 정국불안과 사회혼란 등으로 전체 유효득표수의 50.18% 라는 사상 최악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세디요 대통령은 현 대통령이 차기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낙점제도’를 개선, 후보에 대한 당내 지지도를 높이고 야권의 도전에 맞설 강력한 후보를 뽑는다는 명분아래 미국식 예비선거제를 도입, 지난해 11월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 전내무장관을 후보로 선출했으나 결국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멕시코시티 =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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