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영광은 상처 뿐인 영광으로 전락했다. 6월 29일 63빌딩에서는 MBC 월·화 드라마 ‘허준’의 성대한 종영파티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MBC 노성대사장은 ‘허준’을 ‘국민 드라마’라고 규정했다. 근래 ‘허준’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본 드라마는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하지만 MBC가 3일에 이어 4일까지 장장 120분(하루 60분씩)간 방송하는 ‘허준 특집쇼_그 찬란한 영광’은 국민 드라마를 MBC만의 드라마로 전락시켰다. 시청자는 안중에 두지 않은 제작진의 자아도취의 결과이다.
3일 1부에서 ‘허준’의 명장면, NG 모음, 제작 현장을 소개한 허준 25시 등을 방송한 데 이어, 4일 2부에선 허준 신드롬, 허준 퀴즈가 좋다, 역할 바꿔 드라마, 미니 시상식 등이 방영될 예정이다.
그야말로 자화자찬의 ‘허준’마무리이다. 물론 시청률 60%대를 오르내리며 사회적 신드롬을 낳은 ‘허준’을 한번쯤 재미있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다. 이틀 연속하는 ‘허준 특집쇼…’는 방송의 존립 의미마저 의심케한다.
‘허준’은 높은 관심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적 허구에 대한 논란, 드라마의 사회·교육적 기능, 사극의 역사적 한계, 한의학의 재인식 문제 등 많은 논쟁을 야기시켰다. 대부분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교사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공의 인물인 예진과 홍춘, 임오근 등을 실제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라는 것을 비롯해 드라마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대다수 시청자들은 이의를 달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 최완규는 ‘허준’이 방송되는 동안 끊임없이 제기되는 허준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드라마가 끝난 뒤 제작진과 역사학자, 시청자가 참여해 꼭 정리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종영 파티장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최완규는 부끄럽다는 말을 먼저 했다.
정작 부끄러움을 느껴야할 당사자는 최완규가 아니라 인기 드라마를 방송을 통해 마무리하는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허준’을 국민 드라마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MBC이다.
MBC가 ‘허준’에서 드러난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과 역사 문제를 정리하는 방송을 생각 못했을 리 없다.
그럼 왜 이틀 연속 오락성으로 무장한 프로그램으로 ‘허준’을 마무리하는 것일까? ‘허준’의 높은 인기를 후속 드라마로 연결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시청률이 낮은 좌담회나 토론회보다는 시청률이 어느 정도 담보되는 오락 프로그램 형식이 이윤을 추구하는 방송사 생리에 맞았을지 모른다. 방송사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다르다며 ‘틈만 나면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는’MBC 라면 좀더 전향적인 마무리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허준 특집쇼…’은 방송사의 소탐대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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