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앵커열전/9시를위해 하루를 사는 남자 '김종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앵커열전/9시를위해 하루를 사는 남자 '김종진'

입력
2000.07.03 00:00
0 0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가장 각광받는 뉴스 앵커(Anchor). 언론사 진출을 염두에 둔 대학생이라면 한번쯤 앵커를 꿈꾼다. 아직은 우리 방송사의 뉴스 앵커는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사안마다 취재기자를 결정하는 미국의 앵커 개념은 아니다. 뉴스를 정리해 전달하는 영국 방송의 프리젠터(Presenter)에 가깝다.KBS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9’의 앵커 김종진(39). “기자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공영방송이기에 주관적 감정은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한다.”

김종진은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를 맡고 있는 앵커중 제일 나이가 어리다. 메인 앵커는 주로 부, 차장급이 맡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김씨는 입사 11년차 되던 1998년 8월 31일 다른 기자들과 함께 테스트를 거친 후 뉴스 앵커석에 앉았다.

왜일까? 영상시대에 걸맞는 잘 생긴 외모와 차분한 분위기. 그래서 그가 전달하는 뉴스는 신뢰감을 준다. 하지만 너무 딱딱해 시청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약점도 있다. “옆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시청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용어 선택에서 연출하는 분위기까지 고심하고 있다.”

그의 앵커관이기도하다. 우리 방송은 ‘중학교 2학년 정도의 학생이 소화할 수 있는 용어를 구사한다’는 일본 NHK처럼 뉴스 전달에 준거가 되는 원칙들을 정하지 않아 앵커마다 뉴스 전달의 수준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다. 1980년

한국외대 네덜란드어과 1학년때 그는 시위를 하다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 기자 김종진이 된 계기. “어떤 사람이 경찰서에 들어와서 당당하게 형사들에게 질문을 해요. 우리에게 다가와서 뭐하고 싶냐고 물길래 ‘담배 피고 싶다’고 하니까 한 개비 주더군요. 그가 한국일보 기자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요.”

그는 1987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생활부 국제부를 거쳤다. 뉴스 앵커를 시작한 것은 입사 6년차이던 1993년 ‘뉴스비전’부터. 2년쯤 하고 나니 앵커의 가장 큰 덕목이 ‘중립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생방송이기에 실수도 한다.

가장 큰 실수 하나. 그는 뉴스 진행하는 동안 계속 PD등으로부터 상황 전달이나 지시사항을 리시버를 통해 듣는다. “뉴스 PD가 나를 MC라고 불러 깜박 하고 뉴스 들어갈 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를 ‘엠시 시청자 여러분…’이라고 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욕한 줄 알고 항의를 했다.”

그는 오후 9시를 위해 하루를 사는 사람이다. 오전 8시 기상, 인터넷을 통해 아침뉴스 검색과 국내외 신문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한다. 오후 2시쯤 출근해 1시간 편집회의를 한다. 곧 바로 예고 방송을 위한 멘트를 작성하고, 오후 6시40분쯤 식사한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시간은 방송 10분 전. “두, 세시간 전부터 초긴장한다. 저녁을 안먹으면 뱃심이 없어 멘트가 약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호흡에 지장이 있다.”

식사량까지 신경써야 하는 앵커의 고충이다. 그는 앵커지만 시청률에도 신경을 쓴다고 했다. 요즘 타방송사의 메인 뉴스보다 시청률이 좋아 기분이 좋다고 솔직히 말한다. “취재 경험도 더 쌓고 국제 분야도 더 연구해 한국적 앵커상을 심고 싶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