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묘사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오랜 반목으로 인해 치유되기 어려운 상태로 끝나는 것이 많은데 비해,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애증의 평행선이 눈물의 화해로 마무리되는 쪽이 대부분이다.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애정의 조건’을 대표작으로 하여 마이크 니콜즈의 ‘헐리웃 스토리’, 리브 울만의 ‘소피’, 마사 쿨리지의 ‘사랑에 미쳐서’, 윤인호의 ‘마요네즈’등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모녀 관계에 주목한다.
이들 영화의 어머니들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보다 나의 행복에도 눈을 돌릴 줄 아는 현명한 어머
니들. 오히려 딸이 철없어 보이는 어머니의 상담역이 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전통적인 일방 관계보다 여성으로서의 동반 관계에 더 많은 시선을 주는 바람직한 모녀 영화목록에 웨인 왕의 ‘여기보다 어딘가에’( Anywhere but here, 12세, 폭스)를 추가한다.
홍콩 출신인 왕감독은 대만 출신인 리안과 더불어 서구의 문화와 인간 관계를 잘 이해하고 묘사하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왕은 중국 본토가 고향인 어머니들과 미국에서 나고 자란 딸들의 관계를 그린 ‘조이럭 클럽’으로 여성 관객의 심금을 울린 바 있는데, 1999년작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서는 미국인 모녀관계도 동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가족, 이웃과 함께 하는 작은 고향은 숨이 막힌다”며, 떠나기 싫어하는 14세딸 앤(나탈리 포트만)을 데리고 무작정 베버리힐즈로 온 엄마 아델(수잔 새런든). 딸에게 배우 오디션을 보게 하면서 모텔을 전전한다. 대책 없는 엄마를 불안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숙한 딸. 두 모녀가 티격태격하며 객지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두 여배우의 빼어난 연기 앙상블에 힘입어 설득력 있게 끌어가고 있다.
고향을 찾은 앤에게 친구가 말한다. “네가 여기 계속 살았더라면 네 엄마처럼 떠나고 싶어했을 거야.” 먹고 살기 힘들어도 구두에 광은 내야한다는 엄마의 허풍이 싫었던 딸은 17세가 되자 “내 삶을 살게 해달라”고 소리 지른다.
대학 입학을 위해 비행기를 타게된 딸은 “엄마 덕”이라고 눈물을 글썽이고, 엄마는 “네가 읽는 책 목록을 보내 줘. 딸 수준에 맞추어야지”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양탄자를 타고, 여기 아닌 저 멀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날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누군에겐들 없었겠는가.
◆감상포인트/아버지와 아들들은 몹시 부럽고 서운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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