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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니체사망100년-"그대들이여, 이젠 나를 이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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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니체사망100년-"그대들이여, 이젠 나를 이해했는가?"

입력
2000.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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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8월 25일, 독일 바이마르의 정신병원에서 한 광인이 쓸쓸히 사라졌다. 그 후 100년, 꼭 한세기가 지났다. 그가 튼 물꼬는 시간이 지날수록 넓고 깊게 흘렀다. 새로운 대륙의 발견이었고, 거대한 지각변동이었다.빌헬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인간 심연을 뒤흔드는 디오니소스의 전율로 다가온 철학자. 때문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 20세기 사상사는 한 광인이 남긴 글에 대한 해석사라 해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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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선구자?

그의 사후 반세기를 틀 지웠던 것은 불행하게도 ‘파시즘’이었다. 군중에 대한 혐오, 초인사상 등 니체의 글 자체에 오해의 여지는 충분했다. 하지만,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벳이 저지른 왜곡을 빼놓을 수 없다. 니체 자료의 독점자였던 엘리자벳이 바로 파시스트였다

. 니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극우주의자를 남편으로 맞은 그녀는 히틀러와 교유를 맺는 관계까지 되었다. 니체 해설 뿐 아니라 니체 원고에 대한 왜곡도 심각했다. 심지어 ‘권력에의 의지’는 그녀가 니체 유고를 짜깁기 해서 히틀러에게 바친 책이었다.

로젠베르크 등 파시스트 이론가들은 니체를 국가사회주의의 이론적 선구자로 해석했다. 히틀러가 다름 아닌 니체가 갈구한 초인이란 것. 짜라투스트라의 외침은 ‘영웅적 현실주의’로 찬양됐다. 니체의 인간학을 인종주의 정책에 반영, 반인륜적 인간청소를 정당화했고, 심지어 신전을 지어 그에게 바치려 한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에 대한 비판은 늘 같은 해석틀 안에서 맴돌았다. 특히 맑스주의자들의 비판은 격렬했다.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루카치는 독일 파시즘 미학의 선구자로 니체를 지목했다.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며 제국주의의 비합리주의 야만철학으로 몰아붙였다.

니체는 20세기 내내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경계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 매혹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의 사상적 전환을 니체를 통해 이뤘다는 것은 역사가 남긴 아이러니였다.

파시즘으로부터의 해독

니체 철학의 민감성으로, 대부분은 니체에 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진지한 접근이 시도됐다. 당시 요구됐던 것은 파시즘으로부터 니체를 구해내는 것, 즉 일종의 해독(解毒)이었다.

영미권으로 니체를 보급시킨 카우프만은 니체를 ‘고독한 자의 운명에 관심을 가진 은둔의 철학자’로 묘사했다. 때문에, 영미권에서 니체는 삶을 성찰하는 에세이스트 정도로 이해됐다. 본격적인 철학적 조명은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야스퍼스에 의해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언명은 새로운 신학의 갈구로 이해되었다. 마침내, 1968년 하버마스는 “니체는 더이상 전염될 것이 없다”는 말로 그의 파시즘적 오독을 결론맺었다.

새로운 파장

하지만, 전염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나찌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던 프랑스에서 니체는 새롭게 돌아왔다. 신호탄은 1962년 나온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이었다. 이후 미셀 푸코, 장 그르니에, 모리스 블랑쇼 등이 니체 붐을 일으켰다. 그들은 니체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정치의 서광을 목격했다. 몸에 대한 관심, 생태철학, 페미니즘, 자치운동 등 수많은 현대이론의 자원이 니체로부터 솟아나고 있다.

한국니체학회 회장인 정영도 동아대 철학과 교수는 “니체는 보는 위치에 따라 빛깔이 달라보이는 눈부신 수정과 같다. 그만큼 헤아릴 수 없는 지혜의 보고이다. 현대 철학은 니체로부터 시작했고, 니체의 아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학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봉우리이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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