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전국 각지의 수천명 문인들이 총궐기해서 수도 서울의 요소에 집결하여 일제 파업을 결의한다.문학 관련 각 단체의 지도부 인사들은 삭발을 단행하고 곧바로 단식투쟁에 돌입한다. 여타의 문인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정부를 상대로 요구 조건을 제시한다. 존폐와 생사의 기로에 놓인 문학을 살려낼 구체적인 제도를 확립하라.
빈사 상태의 문인들 생계 문제를 정부가 책임져라. 아무 날 아무 시까지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학예술의 운명을 볼모로 삼아 정부가 완전 굴복할 때까지 문학을 전면 폐업하겠노라.
불과 기천명의 문인들로서는 힘부치는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숫자적으로 다소 불리할지 몰라도 저마다 촌철살인의 무기를 비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수 문인들의 위력은 7만명, 3만명의 다른 단체들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각종 이익집단들 눈에 정부의 공권력이 시삐 보일 대로 시삐 보인 지금이야말로 한번 싸워볼 만한 때이다. 아니나다를까, 문인들의 파업에 대경실색한 대통령과 야당 총재가 나서서 부랴부랴 영수회담을 벌여 마침내 국민 부담으로 문학을 살려낼 것을 결정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세계 최초의 문인 쿠데타로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고도 남을 것이다. 쿠데타가 뭐 별 것이겠는가. 반드시 총포와 탱크가 동원되고 정권이 탈취되는 것만이 쿠데타는 아니다.
거역할 수 없는 다중의 위력을 앞세워 마구잡이로 밀어붙여 정부를 굴복시키고 자신들의 주장을 끝내 관철시켰다면 그것은 쿠데타의 일종임에 틀림없다. 며칠간의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느꼈던 그 암울한 심정이 별의별 망측한 생각을 다 하게끔 만든다.
감히 의료 쿠데타라고 불러 마땅한 저 의료대란에 관해서 이미 입 달린 사람치고 한두 마디씩은 다 거론했기 때문에 뒤늦게 특별히 더 덧붙일 말은 없다.
의약분업에 따른 준비 부족과 안이한 대응과 갈팡질팡하는 정책 끝에 권위와 신뢰의 실추를 자초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이번 일이 나쁜 선례가 되어 앞으로 예상되는 대란의 재연과 그에 따른 시민적 저항과 갖가지 집단 이기주의의 발호에 대해서도 수많은 입들이 큰 목청으로 떠들었기 때문에 더이상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애당초 의료대란의 해결책은 외국인 의사들의 대량 수입 아니면 의사와 약사들의 이익을 두루 만족시켜 주는 국민적 부담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전에도 늘 마늘 파동이 나면 마늘을 수입하고 고추 파동이 나면 고추를 수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정부는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번거로움이나 비효율보다는 힘없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의료 비용을 물리는 손쉬움과 효율 쪽을 택했다.
앞으로 돈 없는 사람은 아파도 그냥 죽어야 되는 사태가 온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쩌네 어쩌네 해도 수많은 전문 직업 중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대접받고 삶의 윤택을 누리는 의사들이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자존심과 권익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환자들을 팽개친 채 모르쇠만 잡은 행동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굳게 내린 철제 셔터에 써붙인, 파업 기간에 아프지 말 것을 친절히 당부하는 안내문을 읽었을 때 느낀 그 도저한 배반감과 분노에 대해서도 새삼스레 거론하고 싶지 않다. 오래 전부터 드나드는 환자들로부터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서명을 종용하던 동네 의원이었다.
위력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의사협회는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 또한 똑같은 소리로 의사협회를 비난했다. 너무도 옳은 말이다. 워낙 대한민국 국민은 정부와 의료계 양쪽 모두에게 인질로 잡힌 항거 불능의 유아 같은 존재요 파리 목숨이기 때문에 더이상 아무런 할말이 없다.
윤흥길·소설가 한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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