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억원에 시가총액이 3,300억원인 기업이 있다. 최근 증자에서 뚝딱 500억원을 모았다. 그런데도 간혹 “그런데 그 기업이 뭐하는 뎁니까”하는 투자자 전화가 온다.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이다. 바이오니아라는 벤처는 아직 코스닥 상장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매출(22억원) 52%를 연구개발비로 썼다. 신약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체 개발중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라는 화려한 직함의 서정선㈜마크로젠대표와 생명공학연구소를 때려치우고 기업가로 나선 박한오㈜바이오니아대표는 “벤처만이 세계 바이오산업경쟁의 살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초안 완성으로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기 시작했으나 게놈연구가 전무한 우리나라가 포스트게놈의 열매를 맛볼 수 있을까.
- 먼저 최근 발표된 인간유전자 초안 완성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서정선 = 20세기는 게놈의 시대로 마무리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 성과일 것입니다. 1830년 세포설로 시작한 유전학의 완성이자 생명의 비밀을 열어줄 초석입니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학자의 선견지명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프로젝트를 추진한 행정관료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박한오 = 생명체가 생겨난 걸로 따지면 35억년 사상 최대의 업적이죠. 그러나 이제 게놈시대 문지방을 넘은 겁니다. 게놈경쟁,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쟁시대에 깃발이 올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유전자 기능을 이해하고 이용해 신약개발에 중요한 유전자를 찾아내야죠.
▲서정선 = 미래가 어떻게 바뀔까요? 게놈연구는 신약개발과 새로운 유전자의학, 합쳐서 보건의료산업에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게놈연구는 의학과 밀접히 연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후발주자인 우리는 어떻게 응용연구에 진입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박한오 = 희망적입니다. 마크로젠이 코스닥에서 화제를 모아 유전체연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일본 독일 등 ‘게놈후발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최근 전체 연구개발예산의 절반을 과감히 바이오분야에 투자했죠. 우리 정부도 올부터 연 100억원으로 대폭 연구비를 늘렸어요. 정부 투자를 더 늘리고 자금동원력이 큰 기업들이 나오면 해볼만 합니다.
▲서정선 = 게놈연구의 초기진입 실패는 당연합니다. 공부 안 한 사람이 성적 잘 받겠다는 게 잘못된 생각이죠. 문제는 앞으로 입니다. 이제 국가 지원을 바랄 때는 지났습니다. 민간에서 정부예산의 10배는 나와야 합니다.
정부가 100억원 넣고 대단한 투자다 생각하는데 마크로젠이 최근 증자한 금액이 500억원입니다. 대기업은 대량생산이 눈앞에 닥쳐야 시장에 진입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게놈분야는 아직 그땐 아닌 것 같습니다.
의사결정이 늦고 매출이나 회수에도 조급하죠. 벤처가 가장 적합합니다. 10개중 9개가 실패해도 역량이 다른 시장으로 확산되므로 값진 실패입니다. 국가적으로 봐도 경비를 최소화한 미래 대비책입니다.
- 하지만 개인 투자자만 손해본다는 ‘벤처거품론’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서정선 = 솔직히 증권사나 언론이 투자자를 부추기지도, 거품이라고 비난하지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에 벤처가 죽습니다. 미성숙한 우리 주식시장에선 매출에 대한 약속을 지켜줄 필요가 있죠.
▲박한오 = (벤처거품론은) 너무 급속한 변화 때문입니다. 미국은 기업의 기술성 시장성 사업성을 분석, 중계하는 회사가 많지만 우리는 아직 없습니다.
한마디로 벤처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미국 밀레니엄제약은 지난해 적자가 3억5,000만달러였습니다.
매출 1억5,000만달러까지 총 5억달러를 연구개발에 쏟아부었기 때문이죠. 5억달러면 5,500억원입니다. 그러나 시가총액 100억달러의 탄탄한 회사죠. 나스닥에선 연구개발기업일 경우 자본금만 충분하면 당장 매출이 없어도 쉽게 상장됩니다.
바이오산업의 자금조달은 이렇게 이뤄져야죠. 결국 마크로젠이나 바이오니아의 책임이 큽니다. 어떻게든 성공전례가 돼야 투자도, 기업도 늘어날 테니까요.
▲서정선 = 일단 여럿이 생겨야 옥석이 가려집니다. 그래서 바이오니아와 함께 바이오벤처협회 결성을 추진중입니다.
벤처끼리 역할 분담과 기술협력을 통해 위험을 나눌 필요가 있어요. 예컨대 박사장은 많은 연구자들이 사랑하는 자동화기기를 개발했는데 이런 연구개발에 컨소시엄을 결성, 밀어줄 수 있습니다. 벤처-대기업-정부간 협조체제도 구축돼야 할 것입니다.
- 이제 와서 벤처 만들고 없애고 하다가 언제 선진국을 따라잡습니까?
▲서정선 = 선발자의 이점이 있으면 후발자의 이점도 있는 법입니다. 셀레라가 3억달러를 들여 90%의 인간유전자서열을 규명했다면 우리는 200억~400억원으로 한국인유전자DB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박한오 = 아시안게놈프로젝트를 놓고보면 일본을 제외한 중국 한국에서 마크로젠이 현금이 제일 많습니다.
현금은 곧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말합니다. 어차피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독식할 수는 없거든요. 누가 먼저 투자해서 유전자 다양성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느냐가 문제지요.
- 그러면 마크로젠과 바이오니아는 어떤 전략으로 어떤 상품을 개발합니까.
▲서정선 = 마크로젠은 한국인 유전자정보를 서비스하는 회사를 지향합니다.
한국인 유전자 서열분석이 40%(전체 게놈의 1%정도) 진행됐고 데이터베이스화합니다. 이를 토대로 10종 이상의 DNA칩을 개발 판매하고, 궁극적으로 전국 의사의 50%, 3만5,000명에게 진단용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휴렛팩커드와 다른 소프트웨어회사와 협정을 맺을 겁니다. 유전자이식 생쥐와 관련 1,000개의 특허를 내고 아시아전역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복제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회사 등 몇개의 오프라인 회사도 만들 계획입니다.
▲박한오 = 바이오니아는 공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비즈니스모델입니다. 돈이 되는 것은 정보가 단백질과 화합물질로 만들어져 신약이 개발될 때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DNA합성기와 서열분석기 등 일체를 자체 개발했습니다. 당연히 셀레라 등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가격경쟁력이 월등하죠.
- 서교수는 서울대 첫 실험실벤처 설립자이고, 박사장은 생명공학연구소를 박차고 나왔는데 돌아갈 곳이 있고 없는 입장이 어떻게 다릅니까.
▲박한오 = 저는 교수하면서 벤처하면 그게 무슨 벤처냐 생각합니다. 남들 돈으로 운영하는데 창업자가 가장 큰 위험부담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회사 차릴 때 연구원 창업제도가 생겨 3년 후 복직이 보장됐지만 아예 퇴직했습니다. 배수진이 필요했거든요.
물론 퇴직금도 필요했고(웃음). 교수라면 3년쯤 휴직하고 벤처에 전념하든가, 또는 외국처럼 비상임이사로 포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목숨을 거는 게 벤처의 힘입니다.
▲서정선 = 실험실벤처는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왜 교수가 돈벌이를 하느냐. 할 말 없죠. 그러나 미래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데 대학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대학은 다양해야 합니다.
도전할 수 있는 교수는 해야죠. 하버드대학이 최근 스탠포드대보다 떨어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스탠포드는 실리콘밸리의 생명공학벤처와 밀접히 연계합니다. 왜 서울대는 가만히 앉아있습니까.
- 벤처 설립 때의 꿈이 눈앞에 보이십니까.
▲서정선 = 톱 사이언스 없이 톱 비즈니스는 없습니다. 저는 실험실벤처가 한국을 살린다고 봅니다. 예전의 사장이 행동가였다면 지금의 사장은 ‘샌님 전문가’입니다.
요모조모 따져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두꺼운 안경을 쓴, 왕따였을 만한 ‘샌님 전문가 시대’가 도래한다고 믿습니다. 서울대 유전체연구센터와 마크로젠의 쌍둥이빌딩을 지어 다리를 놓는게 꿈입니다.
저는 공적부문과 민간부문을 연계하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학교는 최고의 연구를, 벤처는 자본을 제공하는 거죠.
▲박한오 = 처음 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감이 잡힙니다. 처음 구상보다 회사가 더 컸습니다. 내년 4월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세계경쟁에 나설 생각입니다.
▲서정선 = 우리 꿈을 꼭 이루도록 합시다.
▲박한오 = 저도 기원합니다.
●서정선
52년생. 서울대 의대 졸업. 현 서울대 유전자이식연구소 소장, ㈜마크로젠 대표이사, 실험실벤처협의회 회장. 올 2월 마크로젠 코스닥 상장, 26일 연일 상한가기록으로 바이오벤처의 꿈과 거품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박한오
62년생. 서울대 화학과 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화학 전공 석·박사. 1992년 국내 바이오벤처 1호인 ㈜바이오니아를 설립, 현재 대표이사. 철저히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추진력과 낙천적 사고로 무장돼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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