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내지 않거나, 불법자금을 깨끗한 돈으로 바꾸는 돈 세탁은 무척 유혹이 강해 누구나 한번쯤은 그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돈 세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를 적발하려는 당국과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세력과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지난 93년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 소영씨가 미국에서 20만달러를 1만달러 이하로 나눠 여러 은행에 분산예치하다가 당국에 적발돼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미 금융범죄처리실에 걸린 것이다. 미 금융기관들은 고객들의 예금에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즉시 이곳에 신고한다. 연간 신고건수가 7만5,000건에 달한다고 한다. 돈 세탁 규모를 유엔은 매년 6,000억달러, 서머스 미 재무장관과 캉드쉬 전 IMF총재는 세계 GDP의 2~5% 수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이 참여한 ‘금융감독 태스크포스(FATF)’는 얼마전 국경을 넘나드는 불법자금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을 거부하거나 관련 법규가 미진한 15개 국가 및 지역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발표했다. 프랑스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회의에서 돈 세탁 천국으로 지목된 국가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취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세계가 돈 세탁과의 전쟁에 본격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조세 피난처’로 불리는 버뮤다 등 6개국은 앞으로 5년내에 과세규정을 고쳐 돈 세탁을 뿌리뽑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대외금융거래 정보시스템(FIU) 구축기획단’을 발족시켰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돈 세탁을 적발해 내겠다는 것이다. 이 기구는 재경부 국정원 국세청 경찰청 등 관련기관 직원 19명으로 구성됐다. 불법자금을 적발하는 것은 우선 탈세나 절세를 생각하기 전에 봉급에서 꼬박꼬박 세금을 떼는 샐러리맨들의 기(氣)를 살리는 일이다. 너무 늦었지만, 일을 확실히 하면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이 기구의 맹활약을 기대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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