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합치면 만육천원이다.” 김기창 화백, 이종상 서울대 미대학장, 지금은 작고한 이유태 전 이화여대 미대학장이 예전에 함께 모이면 농담삼아 했다는 이 말이 뒤늦게 알려져 새삼 화제다.‘나는 만팔천원이다’란 광고 카피의 선견지명이었을까? 이유를 찾아보면 당대 최고 ‘영정 화백’이란 영예에 대한 익살임을 엿볼 수 있다.
다름아니라, 이들이 바로 국내 지폐 속 위인을 그린 화가들.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김기창 화백, 5,000원권의 율곡 이이와 1,000원권의 퇴계 이황은 이종상씨와 이유태씨가 각각 그렸다.
이들이 그린 지폐의 액면가를 합치면 우스갯소리로 늘 말했다는 1만6,000원이 되는 것. 화가들의 여유와 해학이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이들이 그린 영정이 지폐에 도입된 것은 1970년대 후반. 당시 한국은행은 세종대왕, 이이, 이황의 표준영정 보유자인 김기창, 이종상, 이유태씨 세 화가에게 지폐영정을 의뢰해 1975년 1,000원권, 1977년과 1979년 5,000원권과 1만원권에 지금과 같은 영정이 각각 새겨져 시중에 나왔다.
20세기 한국 영정의 맥은 이당 김은호 화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지막 궁중화가였던 이당은 어진(御眞)화가로서 많은 영정을 그리고 후학을 양성했다.
장우성·김기창·이유태 씨가 모두 그의 문하생. 장우성 씨는 이종상 씨 등을 제자로 두었다. 20여년이상 우리는 영정대가의 작품을 일상 속에서 품고 살았던 셈이다.
송용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