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훌쩍 넘어가는데 따로 준비할 것이 있겠어. 그동안 우리를 도와줬던 분들이나 마음에 품고 가야지.”‘비전향 장기수 9월초 송환’소식이 전해진 30일, 장기수 7명이 머물고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 6동‘만남의 집’은 각지의 지인들로부터 간간이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을 뿐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일상이 이어졌다.
이날 만남의 집에 남아있던 장기수 5명은 북한으로 가기전에 남쪽생활을 정리하려는 듯 지인들의 주소록을 정리하거나 신문을 보며 적십자회담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1층 식당에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한 뒤 대전의 비전향 장기수 쉼터인 ‘형제의 집’에서 ‘만남의 집 어르신들 나눠드십시요’라는 메모와 함께 보낸 한약 한상자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좋지, 뭐.” 평북 박천군 출신인 김석형(86·1991년 출소)씨는 “어차피 가기로 결정된 것인데 8월초든 9월초든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차분히 말했다.
김씨는 “이 나이에 북으로 가봐야 가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향에 간다니 흐믓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홍경선(75·98년 출소)씨는 “송환을 코앞에 두고 먼저 가신 금재성(98년 별세), 최남규(99년 별세) 두 선생이 눈에 밟힌다”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홍씨는 “장기수 송환은 이미 남북정상이 합의했기 때문에 ‘날짜 다짐’을 받았다고 특별히 감동이 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곳 생활을 돌봐줬던 ‘남녘 사람들’과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기만 하다고 했다.
관악구 봉천7동 ‘우리 탕제원’의 한 장기수는 “내조국에서 이방인으로 50년을 살아왔다”며 “북으로 간다해도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반쪽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러 인연들과 헤어져 못 만난다면 이것도 ‘이산’이기 때문에 통일 이전에라도 자유로운 왕래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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