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 제방을 무너뜨려서라도 문산만은 피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장마철 수방대책 진척상황을 따지는 문산읍 주민에게 정부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철저히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싶었던 주민들은 이 어이 없는 응대에 놀라 벌써부터 피난을 서두르고 있다. 고층 아파트에 전세방을 얻어 값 나가는 가재도구와 귀중품을 옮겨놓고, 나머지는 잘 포장해 다락에 올려 놓았다. 올해 수방대책도 뻔한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다른 지역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5,000여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동두천의 경우, 배수펌프장 신설과 교량 보수공사가 지지부진해 올 여름 완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낮은 하상, 좁은 하폭, 부실한 제방 때문에 범람했던 하천 시설물들은 지난해 할퀸 상처가 방치돼 있다. 상습 침수지역인 파주의 배수펌프장 공사는 이제 공정 40% 정도고, 포천군의 경우는 예산배정이 안돼 준설과 제방 보강공사를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의정부·고양·남양주시와 연천군도 꼭 필요한 수방사업들이 도상계획으로 잠자고 있다.
서울의 경우도 안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소하천들의 중·상류지역 제방 보강과 펌프장 신설로 장마철 유수량이 늘어나게 됐는데도 하류지역 배수시설 용량은 변함이 없고, 준설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집중호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부 자료는 재해 취약시설 6,500여 곳에 대한 점검과 정비가 끝났다고 돼 있지만, 현장에 가보면 아직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착공도 안된 곳이 많다. 연례행사처럼 수해를 당한 지역이 이러니 다른 곳은 알아볼 것도 없다.
수방대책이 이렇게 겉도는 것은 해마다 반복되는 예산집행 늑장과 행정태만이 주원인이다. 정확한 피해조사 보고절차를 거쳐 심사와 계획수립이 이루어지고, 예산이 배정된 뒤 입찰- 설계- 보상협의 단계를 밟다 보니 장마철을 두어 달 앞두고 착공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다 큰비를 맞으면 공사를 다시 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나고 결국 예산만 날리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계획을 세워 예산을 따놓고 집행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해마다 지적돼 온 이 구조적인 장애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정부는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장마전선이 또 올라오고 있다. 우선 급한 것부터 집중적으로 손을 보아 재앙을 피하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눈 앞의 수마를 피해놓고, 연속성 있는 수방대책 수립과 시행에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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