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아시아를 뒤흔들었던 신선하고 행복한 남북 정상회담은 이제 막을 내렸다. 세계는 정상회담후 어떤 상황이 이어질 것인가를 궁금해 하고있다.지구상에 일촉즉발의 위기 하나가 사라진 것일까. 동아시아 전략 균형에 대한 새로운 판도가 시작된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변하고 있지만, 확실히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 이번 정상회담은 역사적 성과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오랫동안 호사가들로부터 기괴한 괴짜로 묘사돼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상 유별난 인물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은근히 북한 붕괴론을 언급하던 미 클린턴 행정부의 수뇌들에게도 밝은 희망이 드리워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속에 기억될 인물로 자리 매김했고 노벨 평화상후보로 다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 50년간의 냉전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김위원장과 북한이 진정 변화하고 있는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많은 포대와 스커드 미사일, 화학무기를 배치해 놓고있다.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중하고 있고 핵무기 개발의 의심도 존재한다. 또한 갑작스런 개방을 하거나 20년전 중국처럼 급진적 경제개혁을 채택할 조짐도 없다.
정상회담 직후에도 북한은 늘 사용해오던 교묘한 외교적 수사와 기만책을 그대로 쓰고있다. 미국이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한지 하루만에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경제개혁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 지난해 김위원장의 연설을 내보냈고 미국에 대한 응징과 전쟁준비를 독려하는 방송이 뒤를 이었다.
이번 게임에 임하는 평양의 진정한 의도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자신의 권력과 북한의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복합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한것은 분명하다. 한반도 정책이 북미 구도에서 남북 구도로 전환됨은 북한에 유리하다.
그러나 북한이 보다 넓은 대외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또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북한에 대해 쌀쌀한 태도를 취할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하자면 미국과의 관계증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의 존속에는 경제회복이 핵심이다. 김대통령이 강조한 평화적 공존의 이면에는 북한의 붕괴가 남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남한은 북한을 흡수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부담을 피하고 싶어하며 연착륙을 유도 하기위한 시간 벌기를 원하고있다.
김위원장의 새로운 전략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단계적·제한적 경제개방의 환경을 마련해 줄 것이다. 해주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을 둘러싼 현대와의 협상이 성공하느냐가 경제개방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4,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아울러 북한은 현대에 통제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노동자들이 남한과 접촉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계약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있다.
미국과 한국은 안보에 관한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계속해야 할것인가, 군 현대화를 위해 한국에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과 신무기 도입을 허용할 것인가와 주한미군의 지위 및 지속적인 주둔여부 등이주요 현안이다.
북한이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화려한 수사나 이산가족 상봉문제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요체는 군사적 위협을 없애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재래식 무기의 감축은 6·15 공동선언의 진실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며 북한의 경제회복을 위한 자금마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변화없는 북한에 대규모 경제원조는 현명한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남북 관계개선은 미사일 및 핵문제 해결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됐을 때 비로소 주한 미군문제를 재고할수 있다.
남북문제의 해결은 해외 주둔 미군의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아·태지역의 정치환경을 새롭게 설정할 것이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은 잔디가 자라듯 서서히 진행될 것 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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