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십자회담에서 우리측이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실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국방부는 한국전쟁에 따른 국군포로는 대략 1만9,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귀환 국군포로의 증언 등을 통해 312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명단을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명단만 확인되지 않았을 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이보다 많은 1,900여명에 달할 것이라는게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전쟁후 국군포로문제 처리 과정을 보면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1만9,000여명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측과 유엔군은 한국전쟁후 1953년까지 3차례 포로협상을 통해 유엔군은 8만3,258명(북한군 7만6,119명, 중공군 7,139명)을 공산측에 넘겼으며, 공산측은 1만3,469명(국군 8,343명, 유엔군 5,126명)의 포로를 인도했다.
공산측이 송환해준 규모는 당초 유엔군이 추정한 9만9,500명(국군 8만8,000명, 유엔군 1만1,500명)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최소한 전쟁후 5만여명이상의 군군포로가 북한에 억류됐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국군포로 송환문제는 인도적이고 국가의 본분과 도리의 문제이다”며 “우리측이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는 마당에 북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존 국군포로를 송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납북자 현황
지난해 3월 국가정보원이 집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3년 휴전이후 북한에 의해 납치된 납북자는 모두 454명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통일부 자료에는 442명으로 돼 있으나 국정원은 당시 71년 서독에서 납치된 유성근씨 일가족 4명등 12명을 통일부 자료에 추가했다. 국내 납북자 가족모임도 최근 이같은 숫자를 근거로 납북자의 생사및 북한내 주소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납북자중에는 어로활동중 피랍된 선원들이 가장 많다. 55년5월 ‘대성호’선원 10명이 피랍된 것을 시작으로 87년1월 ‘동진27호’선원 12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116건에 걸쳐 407명이 피랍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해상에서 피랍된 경우로는 70년6월 해군 방송함 2척에 승선했던 우리 승무원 20명이 피랍된 사례가 있다. 69년12월에는 대한항공(KAL)기가 납치돼 승무원과 승객 12명이 납북됐다.
70년대 이후로는 해외근무 또는 해외유학중 납북되는 사례가 생겼다. 78년 노르웨이에서 납북된 교사 고상문씨, 87년 오스트리아에서 납북된 유학생 이재환씨, 95년 중국에서 납치된 목사 안승운씨등이 그들이다.
77년이후엔 여름 방학기간중 홍도, 선유도등에 갔던 고교생 5명이 납치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은 납북자중 일부는 자진 월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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