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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허준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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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허준신드롬

입력
2000.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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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보는 재미가 없어졌다고 허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샐러리맨들의 귀가시간을 당기고, 고3 입시생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놓을 수 있었던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서자출신의 한 젊은이가 어의(御醫)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갈등, 음모, 반전(反轉)이라는 궁중사극의 드라마 요소와 잘 배합이 되면서 재미가 배로 늘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허준’의 드라마 구성상 클라이맥스는 우연히도 의사들의 집단파업과 일치되어 더욱 절정을 이루었다. 때문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모르면서 그 정신에 철저한 허준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도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이 대비되는 바람에 의사들은 덤으로 시청자들의 점수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 그리고 극중에서 돋보이는 허준의 면모는 탁월한 임금 주치의로서가 아니라, ‘동의보감’이라는 의서(醫書)를 향한 불타는 연구열이었다.

요즘 허준 드라마로 매우 기분이 좋아진 어떤 한의사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허준 다음에 방송국에서 시도해 볼만한 사극소재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드라마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동의보감을 편찬하려고 일생을 병자와 약초를 찾아 헤맨 허준과 같이, 김정호는 한반도의 모습을 지도로 남기려고 일생을 조선팔도 구석구석을 헤매다녔다. 둘째는 모처럼 무르익은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타서 남북 탤런트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드라마의 무대를 펼칠 수 있다.

두 사람은 권력, 풍류, 반란 등 조선조를 풍미했던 주인공들과는 다른 일벌레 형의 인물이었던 것같다. 남다른 탐구욕때문이었을까, ‘왕따’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인텔을 세계 최고 반도체기업으로 키운 앤디 그로브는 그의 베스트셀러 책에 ‘Only paranoia can survive’라는 제목을 붙였다. ‘paranoia’는 우리말로 편집광(偏執狂)이라고 번역되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허준과 김정호같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편집광들로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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