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언론 주변이 혼란스럽다. 언론이 각기 이념적 노선에 따라 전문가와 여론이 참여하는 논쟁을 이끄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진지한 논쟁보다 주변적 다툼이 두드러지는 것은 걱정스럽다. 전환기의 빗나간 분란이 국민을 혼란시키고, 여론을 오도할 것이 우려된다.‘고엽제 후유증 전우회’회원 2,000여명이 한겨레신문사에 난입한 사건도 우려되는 일탈조짐 가운데 하나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이 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가 베트남 참전 국군의 양민학살 의혹을 왜곡보도한데 항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따라 언론보도를 합법절차를 통해 시비하지 않고, 폭력으로 언론자유를 유린한 행동으로 비난받고 있다. 보도내용을 따지기 앞서, 불법적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흔히 있는 언론자유 침해 차원에서만 보지 않는다.
베트남 양민학살 의혹보도가 돌출한 것이 아닌데도 참전군인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단순히 보도내용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 이 신문의 이념적 지향과 보도 태도에 대한 보수세력의 불만이 조직적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흥분이 진정되면서, 이념적 혼란을 걱정하는 한 쪽 목소리가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베트남 참전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언론의 노력을 맹목적 보수논리를 앞세워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양민학살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고엽제 피해진상을 밝히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냉전이 낳은 부도덕한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과오를 올바로 기록하려는 노력이다. 이 신문은 전쟁을 진보와 수정주의 시각에서 보지만, 고엽제 피해를 밝히는 데도 힘을 기울여왔다. 따라서 참전군인들이 양민학살 보도를 빌미삼아 이 신문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듯이 행동한 것은 자신들의 절박한 주장의 근거를 스스로 훼손한 것과 같다. 좀 더 넓은 안목이 아쉬운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인식의 차이는 한국전쟁의 재평가와 민족화해 과제를 둘러싼 언론과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도 연결돼 있다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온건한 보수와 진보적 인식은 대체로 민족공존 논리로 수렴됐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양극에는 냉정한 현실 인식만을 앞세운 냉전논리와, 극단적 수정주의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이런 과도적 상황에서 절실한 것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인정,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민주적 논쟁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력이다. 이같은 열린 자세는 언론과 사회가 북한을 평가하고 보도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점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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