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에 살집과 생명을 줍니다"“현대의 박물관은 단지 유물을 보관전시하는 기능에서 일반인과 어린이에게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학습의 장소로 개념이 바뀌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 전시과장 김영원(47)씨는 “유물을 직접 거두어 일반인의 눈 앞에 펼쳐놓기 까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학자 김원용교수의 추천으로 취직한 곳이 국립중앙박물관. 26년째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학예연구관인 그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이다. 유물관리 전시기획 학술조사 등이 업무다. 발굴에 앞서 유물의 분포상황을 지도에 표시하는 지표조사도 중요 역할 중 하나다.
한 번 현장에 나가면 5-6개월, 도자기 파편이나 부러진 숟가락 등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견디기가 쉽지 않다. 물론 역사 사회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도 전제돼야 한다.
그는 “박물관 업무와는 별개로 학업을 계속해 왔던 것이 일의 질을 높이는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석·박사학위를 받아 낸 것은 밤잠을 줄여가며 고달프게 공부한 결과이다. 도자기를 전공, 국내 미술사 전공 박사 1호를 기록했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질 때마다 필요한 지식을 먼저 쌓았다. “1998년 공주박물관장에 부임했을 때는 밤새워 지표보고서와 발굴보고서를 읽었다. 전공이 15-16세기 도자기지만 그 곳에서 백제 도자기를 새로 공부했다”
‘아는 만큼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은 이 곳에서도 확인됐다. “백제도자기는 국내에서 최초로 유약을 사용했다.
신라의 수도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무수한 도자기 파편이 백제 양식인 것은 백제도자기가 신라에 전해진 결과였다.
이러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 파편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공부한 내용으로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도자기에 대한 논문 두 편을 완성할 수 있었고,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으로 자리를 옮긴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2003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새 박물관의 전시공간을 꾸미는 것. 대지 9만2,000여평.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 5대 박물관을 목표로 하는 새 박물관은 전시실 면적만 1만평이 넘는다.
전시에 관한 기본개념을 세우고 이에따라 전시공간을 디자인, 연출하기 위해서는 공간구성 조명 영상매체활용 등 새로운 지식이 요구된다.
4월초 프랑스 외무부초청으로 파리와 그르노블의 박물관을 견학했다.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유물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열장이나 조명만 눈에 띄었다.”자신이 몰두하는 일 외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그는 진정한 커리어 우먼이다.
김동선기자
dongsun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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