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車분리 않겠단 말이냐"‘깃털에서 몸통을 떼내겠다는 꼼수.’ ‘정부를 우롱하는 처사.’ 현대그룹측이 28일 ‘역(逆) 계열분리’방안을 들고 나오자 주무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현대가 자동차를 분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는 국민과의 약속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논리적 문제점
공정위는 그룹에서 자동차를 떼어내는 것이 아닌 자동차에서 그룹을 분리시킨다는 ‘역 분리’시나리오가 공정거래법으로 보나, 사실관계로 보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란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에서 친족계열사가 떨어져 나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것. 강대형(姜大衡) 공정위 독점국장은 “현대그룹의 동일인은 정몽헌(鄭夢憲)씨로 계열분리는 정몽헌씨가 지배하는 그룹으로부터 자동차가 떨어져 나오는 경우에만 성립될 수 있다”며 “동일인이 스스로 분리된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역분리’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강국장은 “자동차쪽의 자산은 26조원, 건설(그룹)쪽 자산은 63조원대인데 63조원 그룹에서 26조원 그룹이 떨어져 나오는 것이 분리지, 26조원그룹에서 63조원그룹이 나가는 것을 어떻게 계열분리로 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30대 대규모기업집단은 매년 4월 1회만 지정하도록 되어있으며 신규 지정기업은 1년간 출자제한, 상호채무보증, 내부거래 등 30대 재벌에 대한 규제가 유예된다. 만약 현대그룹이 자동차에서 분리된다면 63조원대의 현대그룹은 재계서열 2위임에도 불구, 결국 2002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 출자·상호채무·내부거래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3% 요건충족만이 유일한 길
공정위는 9.1%에 달하는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을 법적 계열분리요건인 3%미만으로 낮추는 것만이 유일한 계열분리 방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측이 그룹의 동일인을 몽헌씨에서 현대건설로 바꾸는 안도 제시했지만 건설의 대주주가 몽헌씨인 이상 동일인은 몽헌씨뿐이다”라며 “현대가 진정 자동차를 분리할 의사가 있으면 정도(正道)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및 채권단 입장
청와대와 재경부, 채권단 등은 일단 “공정위가 알아서 할 일”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6월말까지 자동차를 분리한다는 것은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시장과의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의 한 고위인사도 “지난달 현대건설 자금지원은 계열사 매각 및 3부자(父子)퇴진, 현대차 계열분리 등 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현대가 자동차를 분리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시장불신을 자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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