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에서 백범은 자신의 소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백범(白凡)과 DJ. 활동시대나 생활공간은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서 공통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분단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북한을 찾아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백범이 48년 4월19일 수행원 몇 사람과 함께 사실상 단신으로 38선을 넘었고, 그로부터 52년후 DJ는 130명의 수행원, 50명의 수행기자와 함께 비행기편으로 평양에 내렸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38선을 베고 쓰러지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평양을 찾았던 백범에게 청년 김일성은 민족문제를 논의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52년후 평양을 찾은 DJ는 그의 아들 김정일과 전쟁의 공포로 부터 7,000만 민족을 구출하는 단서가 되는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백범이 비운의 민족지도자라면, DJ는 불운을 스스로 극복해 내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분단의 현실을 어떻게든 타파하려 했던 집념을 불태운 점에서 비교된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 언론이나 지도층은 이미 52년전 백범이 먼저 갔던 길에 대한 평가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난 26일은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지 51주기가 되는 날로, 서울 효창공원에서는 ‘백범기념관’건립 기공식이 있었다. 이에 앞서 24일엔 ‘백범 김구전집 출간기념식’도 열렸다. 두 행사 모두 김대중대통령이 참석, 축사와 기념사를 했다. 자신의 이념적 스승에 대한 겸허한 추앙이 아니었던가 한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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