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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이제 한국을 떠날 때'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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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이제 한국을 떠날 때'論

입력
200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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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미국 카터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변화로 한미관계가 경색되던 시절에 있었다는 비화다. 미국이 소리 소문없이 주한미군을 조금씩 빼내자, 박정희대통령은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미국이 박대통령의 복안이 무엇인가를 분석한 결과, 강단있는 그가 수틀리면 북한을 먼저 공격해 국지분쟁을 유발할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미군도 분쟁에 말려들어 철군(撤軍)은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놀란 미국은 한국군 전력증강 등 유화책으로 박대통령을 달래 겨우 갈등을 수습했다.그러나 서로 못마땅하게 여기던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피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게 뒷날 10·26사태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으나,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흔히 ‘인계철선(Tripwire)’으로 불린 주한미군의 성격을 잘 설명해 준다. 덫에 연결된 철사·도화선 등을 뜻하는‘Tripwire’는 북한이 잘못 건드리면 화(禍)를 입게 되는 주한미군의 도발억지력을 일컫는 동시에, 미국이 국지분쟁에 자동개입하는 부담스런 체제를 상징했다.

20여년이 지나 ‘인계철선’은 낡은 개념이 됐다. 대신‘주한미군은 동북아 안정에 필수적’이란 새로운 논리가 별 논란없이 수용됐다. 냉전이 끝나고 남북한 힘의 균형이 크게 기운 마당에 주한미군이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는 회의는 무시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미군의 존재, 그 보호막에 익숙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주한미군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자 우리 정부와 미국은‘주한미군은 통일뒤에도 필요하다’고 거듭 천명했다. 중국과 북한도 이를 수긍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주한미군 지위변경 등이 조심스레 거론되는 사실은 어느 순간 논쟁이 불붙을지 모를 가변성이 잠재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쪽에서 먼저 철군론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케이토(Cato)연구소 및 우드로 윌슨 평화연구센터 등의 리버럴한 학자들은 ‘이제 한국을 떠날 때’라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게 우리 국익과 합치하는지 여부를 떠나, 고정관념을 벗어나 앞을 내다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철군론은 우선 북한의 위협을 부정한다. 북한군은 숫자만 많을 뿐 만성적 식량·연료·훈련부족 상태이고, 무기와 장비 또한 낡을대로 낡았다. 무엇보다 인구는 남한의 절반, 국민총생산(GNP)은 30분의 1, 국방비는 5분의 1에 불과해 국력에서 비교가 안된다. 또 한국과 접근한 러시아나 중국이 전쟁을 지원할 리 없고, 핵과 미사일도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쓸모없다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자살을 감행한 나라는 없었음을 철군론자들은 상기시킨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동북아 안정판’역할에도 회의적이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대사가 지적했듯이, 주한미군의 주된 역할은 최대 잠재적국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군론자들은 중국과 분쟁에 대비해 굳이 미군을 한국에 전진배치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중국의 공격표적이 되는 것을 우려한 한국이 분쟁시 미국 편에 서는 것을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한미군이 한국과 일본의 분쟁을 억지한다는 논리도 공허한 것으로 본다. 일본이 강력한 한국을 침략할 가능성은 ‘화성인 침공’에 비유한다. 또 한국을 떠나도 미국은 여전히 동아시아 안정유지 세력으로 남을 것임을 지적한다.

철군론은 무엇보다 한국이 21세기 미국 국익에 주변적이라고 본다. 한반도는 이제 ‘정치적 성인’이 돼야 할 한국에 맡기고, 더 중요한 지역에 힘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고립주의 전통을 쫓는 미국 사회 외곽의 주장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다. 변화는 항상 예비돼 있다. 남북관계를 한국에 맡기라는 주장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이들은 미군철수를 대가로 북한이 쓸모없는 병력을 줄이고, 휴전선에서 후퇴하도록 하자는 구상까지 제시한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운명을 주도하겠다면, 생각부터 보호자가 필요없는 어른이 돼야 한다.

강병태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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