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는 야릇한 맛 만큼이나 상징적인 마력을 지닌다. 특히 쇄국의 한계점에 이른 과거 공산정권들에, 코카콜라는 삼키기도 버리기도 어려운 계륵(鷄肋)과도 같았다. 코카콜라가 담고 있는 ‘자유와 개방’의 청량한 이미지. 이 때문에 공산권 지도자들은 콜라의 수입허용 여부를 놓고 정권차원의 주판알을 튕겨야 했다. 대내외 이미지개선 효과와 체제내부의 부담, 실리와 명분 사이의 딜레마 등 골치아픈 저울질이었을 것이다.■공산진영의 맹주 구소련에 콜라가 본격 진출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당시만해도 미국에 별로 뒤질 게 없다는 체제 자신감이 콜라 상륙을 받아들이는 용단을 내리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크렘린은 원조인 코카콜라는 두려웠는지 동생격인 펩시콜라만을 허용했다. 그마저 수도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노보로시스크에 생산공장을 세우도록 제한하면서…. 이렇게 진출한 미국의 콜라가 장차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체제 붕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는 아쉽게도 나와있는 것이 없다.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는 80년대말~90년대초는 2차대전 이후 세계 콜라시장의 최대 확장기로 기록된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부문의 매출액이 전체의 절반에 못미치던 것이 90년대들어 80% 이상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구국가들에서는 콜라의 상륙 소식이 곧 체제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94년 알바니아에 코카콜라 공장이 준공됨으로써 콜라의 동구진출 완결판이 매듭지어진다.
■북한이 지난 주 코카콜라를 처음으로 공식 수입했다. ‘양키이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코카콜라를 미국의 대북 엠바고 완화조치 이후 첫 수입품목으로 선택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코카콜라공장이 이미 들어서 있는 사회주의 혈맹 중국을 통해 이를 수입한 모양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콜라공장의 건설시기도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코카콜라의 상륙이 파괴적인 ‘트로이의 목마’가 되기보다 고단위 ‘개방의 우유’가 되기를 기대한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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