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방치땐 국민만 골탕의·약·정 갈등과 의사들의 집단폐업으로 만신창이가 된 의약분업이 27일로 시행을 불과 나흘 남겨놓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활한 시행은 어렵다.
그나마 부족한 시간이 1주일 의료대란으로 허무하게 지나갔다.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 장관이 “시행준비가 미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자인할 지경이다. 지금부터라도 처방약 비치, 의약품 공급체계 확립 등 현안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모든 피해는 일반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속타는 약사 서울시약사회 권태정(權泰禎)부회장은 “약국의 전문의약품 비치율은 10-20%밖에 안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의약분업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의·약사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의약분업협력회의가 처방 의약품 목록을 결정해야 하는데 의료계 불참으로 회의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다수 약국은 의료보험연합회의 지역별 다빈도 처방약 리스트을 보고 준비하고 있지만, 그나마 리스트대로 처방약을 갖춘 약국이 50%도 되지 않는다. 자칫 환자가 처방전에 적힌 약을 찾아 헤매는 사태가 벌어질 우려마저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A약국 P약사는 “의사와 약사가 ‘선의(善意)’에 의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의사들이 약국이 조제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해주도록 철저한 사전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멍뚫린 공급체계 전문의약품 비치에 못지않은 골칫거리는 약의 포장단위다. 지금까지는 500-1,000알 정도로 포장했지만 의약분업 시행시 약국들은 구입과 재고 부담으로 30-100알로 나눠 ‘소분(小分)’ 공급하길 원하는 실정. 그러나 제약회사와 배송센터(도매상)는 생산라인 개조와 수작업에 따른 비용, 인력문제 등으로 난색이다.
결국 제약사→ 배송센터→ 약국→ 환자로 이어지는 물류시스템의 완전 구축과 포장단위 및 배달망 확립 등 공급체계가 갖춰져야만 의약분업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병익(金炳益)성균관대 의대교수는 “의약분업 정착의 최대 관건은 환자들이 약을 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하는 것”이라며 “단골약국제를 도입, 처방전을 환자가 지정한 단골약국에 팩스 등으로 미리 보내 약을 지어 놓거나 약이 없으면 배송센터에 신속히 주문토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려되는 의·약 세싸움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가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른바 ‘직능분리’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양측이 ‘골탕먹이기’ 경쟁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령 의사가 자주 쓰지 않는 의약품을 처방하면 약사는 조제를 못한다. 당연히 환자는 “약국에 약도 없느냐”며 불만을 털어놓게 된다.
약사가 대체조제를 하면 의사측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는 골탕이다. 조홍준(趙洪俊)울산대의대교수는 “환자들의 불신해소는 양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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