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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열광뒤에 따라야 할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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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열광뒤에 따라야 할 노력

입력
2000.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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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경탄스러운 6월의 날들이었다.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쪽 언론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며칠 동안, 골수 냉전주의자가 아니라면 놀라움과 함께 가슴뭉클한 느낌을 금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쪽 주민들이, 조화일망정 손에 손에 꽃을 들고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촘촘이 올라서서 남쪽대통령을 환영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우리 역사에서 8·15 광복을 맞았을 때 한번 정도는 저런 광경이 펼쳐질 수도 있었겠지 싶었다.이같은 열광된 분위기는 당연한 것이고 필자 또한 최근의 변화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열광이 지난 후에는 진정으로 바람직한 남북관계, 그리고 통일 한국의 모습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모든 통일이 다 선일 수는 없으며, 상생을 위한 통일이라면 면밀하고 세심한 준비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 준비는 대내적인 면, 대외적인 면에서 모두 필요하다.

먼저 대내적인 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교류건 통일이건 남쪽과 북쪽 모두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키고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1990년 10월초 독일이 통일되던 순간을 동베를린에서 보냈는데, 당시 동독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동독 지식인들의 분위기는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동독 공산당 정권에 대항하였다가 반체제 인사로 몰린 적이 있던 한 신학자가 통일되기 직전“동독은 지금 점령상황에 있다”며 비통해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은 ‘서독 자본에 의한 점령’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의 비탄은 이로 인해 자생적인 동독민주화의 성과가 무로 돌아가고 특히 동독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없이 통일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는 분단의 배경이 현저히 다르고 남북한 관계, 남북한 내부사정, 이 모든 것이 독일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 나치의 만행이라는 역사적 대죄 때문에 분단됐던 독일과달리 국제정치적 세력 놀음에 말려 분단된 한반도는 그동안 진보세력의 통일 운동이 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전개되어왔던 반면 수구 냉전세력이 이를 위험시하여 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북교류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북한이라는 값싼 노동력 공급원, 자본 투자처를 만난 재계인 것 같다. 재계 주도의 남북교류가 북한 경제도 살리고 남북한 관계도 개선한다면 그것은 물론 큰 공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남쪽 사람들의 준비가 충분치 못해 북한 주민들을 세심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이용하려 들 경우 남북한 주민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남한은 남한대로 남북교류와 통일이라는 명분이 모든 것을 압도하면서 내적 모순을 무시하고 은폐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과도한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이제 한국에서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남북통일이야말로 진정 한국인들의 독자적 생존능력의 실험장이 되리라 생각한다. 분단상황에서 남북한은 냉전구도속에 확실히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제정치적 선택의 고민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쪽은 미국 주도의 국제관계에 편입돼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독자적 외교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드물었거니와 그럴 필요조차 별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한관계가 개선되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된다고 할 때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공동체가 취할 자주적 입장이 중요해질 것이다. 진정한 선택은 지금부터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은 우리 모두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새로운 것의 창조를 위해 숙고할 것을 요구하는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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