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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꾸기·부동산 추궁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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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꾸기·부동산 추궁 '진땀'

입력
2000.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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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총리서리 인사청문회 쟁점들■ 말바꾸기

이한동총리서리에게 잦은 말 바꾸기는 처음부터 야당의 주요 공격 포인트였다. 이총리서리는 서두발언에서 “험난했던 정치 현실에서 소신으로 일관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말을 바꾼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자락을 깔았지만 야당의원들의 송곳 질문을 피해가기는 역부족.

한나라당 원희룡(元喜龍)의원은 “‘자민련 사전에 공조란 없다’‘금강산 관광은 중단돼야 한다’는 등 숱한 말들을 3개월여만에 뒤집은 것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는 이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원의원은 ‘정직’ 과 관련된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내용을 들어가며 “아이들의 가치관 혼란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총리서리는 “선거때는 감정을 섞어서 말해야 하고 당론이 소신과 다를 수도 있다.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피해나갔다.이총리서리는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소신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를 사과한다”고 몸을 낮췄다.

“이총리서리 자신이 김종필(金鍾泌)총리 임명 당시 헌법소원까지 내지 않았느냐”는 안상수(安商守)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는 “당시 한나라당 당론에 따랐다”고 답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 5共참여등 정치역정

이한동 총리서리는 야당의원들의 가시돋친 질의에 비교적 여유있게 넘어갔다. 하지만 ‘원죄’처럼 따라다니는 정치 입문 과정에 대해서는 흠집이 나는 것을 감수해야 만했다.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의원은 “제5공화국때 정치권에 들어와 고속 출세 가도를 달렸는데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학살사건 등에 대해 분개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총리서리는 “자세한 정보가 없어 정치적 소신을 세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5공 청문회 등을 통해 실상을 알게 됐다”고 피해갔다.

안의원이 재차 “쿠데타 세력에 가담해 정치를 한 것은 이를 방조한 것이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리자 이총리서리는 “당시 고향에서 정치권 입문을 원했으며 고향에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정치권에 들어갔을뿐 신군부에 협조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총리서리는 이어 “12·12사건과 광주민주화운동은 불행한 역사”라며 “희생된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염(念)을 갖고 있다”고 위기를 넘겼다.

■ 부동산 문제

부동산 등 재산형성과정은 이총리서리를 가장 괴롭힌 사안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총리서리의 포천 일대 부동산구입경위 등을 집중 거론하며 “땅 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이병석(李秉錫) 의원 등은 특히 이총리서리의 부인 명의로 산 포천 일대 토지 2만8,800여평과 1966년 매입한 1,200평의 농지 등을 거론하며 “현지에 살지 않으면서 농지를 매입한 것은 불법 아니냐”“당시 200만원을 투자, 현재 시가로 20억원이 되었다면 부동산 투기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야당의원들은 “일부 토지를 매입하면서 주소를 옮긴지 40일만에 빠져 나왔다”며 위장전입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총리서리는 답변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려면 강남에 땅을 샀을 것”이라며 투기 의혹을 일축한 뒤 “부인명의로 친지 3명과 공동매입한 땅은 매입당시 황무지였고 이를 개간해 농지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 농지에 대해선 “아버지가 임의로 매입해 나의 이름으로 등기를 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등 진땀을 흘렸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 풍산금속 사건

야당 의원들은 이한동 총리서리가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인 1988년 발생했던 풍산금속 노사분규 사태를 집중 거론했다. ‘노동탄압’ 이미지를 부각시켜 ‘지도자 자질’에 흠집을 내려는 전략. 이병석(李秉錫) 의원은 “ 22명의 근로자들이 있는 풍산금속 안강공장에 경찰병력 3,800명을 투입한 것은 과잉진압이 아니었느냐”고 추궁했다.

이의원은 또 “안강공장을 고르는데 두달이 걸렸고 공권력을 투입해 문제가 생기더라도 명분이 있다”고 발언한 이총리서리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며 풍산금속사건을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의 원형(原型)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이총리서리는 “안강공장은 폭약이 4,000톤가량 야적돼 있는 국가보안시설로 당시 상황이 심각했다”며 “조폐공사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또 “88올림픽 이후 모든 공단이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사회질서를 안잡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면서 “인터뷰 내용은 이를 어디서부터 진정시켜야 할지를 걱정한 것”이라고 받아넘겼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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