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개정 각계반응“결국 정부가 이익단체의 집단행동에 ‘백기’를 든 것 아닙니까.”
24일 여야 영수회담 결과 약사법 개정방침이 발표되자 많은 시민들은 사태해결을 위한 현실적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3일 당정회의에서 나온 최종대책안에서도 ‘선(先)시행 후(後)보완’원칙을 고수하겠다던 정부가 불과 하룻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었기 때문.
시민단체들도 “이익단체에 대한 정부의 굴욕적 투항” “민주질서와 사회적 합의 파기”“최악의 선례”등의 용어를 써가며 비난한 뒤 “이제 앞으로 이익단체들의 유사한 집단행동을 막을 명분은 더이상 없다”고 개탄했다.
경실련, 참여연대, YMCA 등 20개 시민단체가 망라된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는 25일 오후 성명서를 발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굴복으로 의료개혁 좌초는 물론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질서라는 기본원칙마저 붕괴시켰다”며 “향후 이익단체들이 국민생활을 담보로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정부가 어떻게 이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고 강력 비난했다.
시민 정찬걸(鄭燦傑·57·택시기사)씨는 “어차피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면 사태악화 전에 진작 해결했어야 한다”며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린 이런 무능한 정부와 정치권을 누가 믿고 따르겠느냐”고 반문했다.
시민들은 사상 최악의 의료대란까지 정부가 보여준 무기력·무원칙한 대응을 비난하면서, 한편으로 상황에 따라 연일 강경과 온건을 오간 사법당국의 ‘고무줄식’ 법 적용태도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회사원 이모(30·서울 강서구 공항동)씨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공권력을 투입, 신속히 해결했던 정부가 의사폐업에 대해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앞으로 힘없는 이익단체가 파업이나 집단행동을 할 때 어떻게 나올지 주시해 보겠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태해결과 법 적용은 엄연히 별개”라며 “대상과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이런 식의 법 적용이야말로 앞으로 국민의식 전반에 두고두고 후유증과 폐악을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당장 공무원노조 결성과 지하철 등 공공노조 파업, 교사나 약사의 집단행동이 불거질 경우 정부가 통제·조정능력을 상실한 채 표류할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尹麟鎭)교수는 “이익집단이 극단적 수단으로 밀어 붙이면 무언가 얻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보여줬다”며 “이후 노사문제나 교사 처우개선문제 등에 있어서도 극단적 대결양상과 파행적 해결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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