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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 무서운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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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 무서운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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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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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3단 VS 조한승 4단반상에 ‘무서운 10대’의 바람이 거세다. 빠른 두뇌회전과 빈틈없는 수읽기, 쉽게 물러서지 않는 승부근성과 패기로 무장한 신예들은 올들어 주요 기전의 본선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반상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10대 돌풍의 선두주자는 연초부터 32연승(역대 연승랭킹 3위) 무풍가도를 질주해온‘불패소년’이세돌(17)3단.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등 기라성같은 거물들이 그의 연승행진에 제물이 됐다.

하지만 천하의 이세돌도 하나밖에 없는 입단동기인 조한승(18)4단만 만나면 왠일인지 쩔쩔 맨다. 5월17일 제11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이세돌의 33연승을 저지한 장본인이 바로 조4단이다.

공교롭게도 이3단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대국에서도 조4단에게 발목을 잡혀 연승행진(10연승)에 종지부를 찍은 적이 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당시 조4단한테 패하지만 않았더라도 이3단은 이창호가 세운 역대연승 최고기록(1990년 41연승)을 갈아치울 수도 있었다.

이세돌과 조한승은 ‘영원한 라이벌’이자 ‘환상의 콤비’이다. 한국기원 연구생시절부터 단짝친구로 지내온 둘은 최근 국내 최강의 복식팀을 가리는 ‘제1회 가우디배 입단동기 대항전’(바둑TV 주최)에서 32개팀 가운데 당당히 우승을 차지, 천하무적 콤비임을 과시했다.

한국바둑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두 기사가 만났다.

-둘은 단짝친구 사이로 알고 있는데?

▲이세돌=연구생 때부터 늘 같이 붙어다니며 바둑공부를 했으니까요. 나이는 형(조한승)이 한 살 위지만 프로입단도 같이 했구요. 스타크(스타크래프트)랑 당구도 형한테 배웠는걸요. 한승이형 스타크 수준은 대단해요(웃음).

▲조한승=처음 연구생으로 들어왔을 때 난 세돌이를 알았지만 세돌인 날 몰랐을걸요. 세돌이는 어릴 때부터 워낙 유명했잖아요.

초등학교 2학년때 해태배와 KBS어린이바둑왕전에서 우승했고…. 세돌이하곤 같이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마음도 통하고. 세돌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중1 때 입단했으니까 프로입단은 둘다 빠른 편이었죠. 입단동기라 누구보다 친하긴 하지만 자주 만나기가 힘들어요. 세돌이가 워낙 바쁘잖아요.

-친한 만큼 서로 상대의 바둑을 잘 알고 있겠지요.

▲이세돌=글쎄요, 형 바둑은 도대체 파악이 안돼요. 아주 두터운 편이죠. 특히 초반 포석은 누구보다도 강해요. 초반 50수는 거의 이창호예요(웃음).

▲조한승=창호 형을 욕되게 하지 마라. 세돌인 수읽기가 빠르고 정확해요. 역전승이 많은 걸 보면 누구 못지 않게 뒷심도 센 편이죠.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세돌인 요즘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한승형 바둑은 파악이 안돼 맞붙기만 하면 이상하게 착오"

▲이세돌=제가 수읽기가 정확하다고들 하는 데 잘 모르겠어요. 50수까지 읽고 둔 바둑도 있는데 그 바둑 결국 졌거든요.

(혼잣말로)그게 정확한건가? 한승형은 초반에 유리하게 바둑을 전개하는 힘이 있는데…. 초반 약세를 만회하려다보니 으레 난폭한 싸움바둑이 되고….

제 바둑에 역전승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초반에 바둑이 나쁘니까 계속해서 싸움을 걸게되고, 그러다보니 운좋게 궁지에서 벗어나는거죠.

-조4단도 말했듯이 이3단은 올들어 유난히 성적(6월 현재 40승2패로 승률 및 다승 1위)이 좋아졌는데.

▲이세돌=특별히 바둑 두는 스타일이나 기풍이 바뀐 건 없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내 방식대로 둡니다. 운이 좋아서 승률이 높은 것이겠지요.

▲조한승=세돌이가 침착해졌어요. 최근들어 제한시간을 다 소비해가며 두는 숨이 긴 바둑이 많아졌는 데 전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이3단은 번번이 조4단한테 패해 연승행진에 제동이 걸렸는 데 혹시 ‘조한승 징크스’가 있는 건 아닙니까.

▲이세돌=징크스라고 하긴 싫은데요. 바둑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게임이니까요.

어쨌든 한승이 형이 나보다 한 수 위이니까 이긴 거겠지만, 형하고 둘 땐 이상하게 판단착오를 자주 하게돼요. 당연히 내가 유리한 바둑이라고 낙관하면서 두었는 데 다 두고나니 졌어요.

▲조한승=세돌이가 안해도 될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긴 것 같아요.

▲이세돌=아무튼 이상해요. 사실 내가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 바둑을 진 적이 없거든요. 한데 형한테는 매번 그런 바둑을 졌어요.

그래서인지 33연승 길목에서 한승형을 만났을 땐 왠지 ‘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군요. 결국 그 바둑을 지고…, 무척 속이 상했어요.

그 자리에선 그냥 태연하게 웃어넘겼지만. 기가 죽어버렸는지, 그 후의 대국에서도 맥을 못췄잖아요.(이3단은 연승행진이 멈춘 뒤 제44기 국수전 예선에서 신예 최철한3단에게 패했다.)

-조4단에겐 졌지만 입단동기들끼리 맞붙은 제1회 가우디배에선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함께 우승까지 했잖아요.

▲이세돌=한승 형하곤 마음이 잘 통하는 편입니다. 서로의 행마에 익숙해 있다보니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조한승=세돌이가 역전의 명수잖아요. 8개월여 동안 많은 선배팀들과 대결하면서 어려웠던 바둑이 많았는 데 세돌이의 날카로운 공격력 덕분에 쉽게 타개할 수 있었던 같습니다.

▲이세돌=준결승에서 만난 유재형-안조영 선배 팀하고 싸울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우리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바둑이었는 데 천신만고 끝에 반집 차로 이겼습니다. 아주 짜릿한 승리였습니다.

-요즘 신예기사들은 바둑 돌을 잡을 때부터 하나같이 이창호 바둑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이창호의 벽을 넘지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세돌=(고개를 흔들며)아닙니다. 물론 창호형 바둑에서 배울 점이 많죠. 누가 뭐라해도 창호형은 세계 최강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신예들이 창호형 바둑을 흉내낸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습니다. 신예 중에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해 나름대로 독창적인 기풍을 가진 기사들이 많아요.

실리형에다 두텁게 두는 바둑을 하나같이 이창호식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 아닌가요.

▲조한승=그대로 흉내낸다고 이창호 바둑이 된다면 누군 못하겠어요. 해도해도 끝이 없는게 바둑인데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순 없겠죠.

▲이세돌=어차피 창호형은 언젠가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입니다. 실력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창호형과 타이틀을 놓고 승부를 벌이더라도 부담은 없을 거예요. 제가 속편한 위치 아닌가요. 후배니까.

"세돌이는 수읽기 빠르고 정확 공격력 탁월한 역전이 명수"

-둘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채 하루종일 바둑판만 붙들고 사는 셈인데 다른 친구들이 부럽진 않나요.

▲이세돌=남을 부러워한 적은 없어요. 어쨌든 내가 선택한 길이고, 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나름대로 틈틈이 책도 일고, 영어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웬만한 또래 친구들보단 나을걸요.

요즘엔 DDR 못하면 왕따 당한다고 하는 데, 내가 원래 땀흘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DDR은 싫어하는 편이예요.

▲조한승=항상 바둑만 생각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든 것은 스스로 노력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여자친구는 없나요? 동년배 다른 친구들은 미팅도 하고 그럴텐데.

▲조한승=없어요. 아직은 관심이 없는 편이예요.

▲이세돌=친구라고 해봐야 주로 바둑두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죠. 한승이형은 잘 생겼으니까 혹시 있을지 모르죠(웃음). 저는 컴퓨터 채팅하다 ‘번개팅’도 한번 해본 적이 있는 데 잘 안됐어요.

-앞으로 계획은?

▲조한승=대학진학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군대문제도 그렇고. 바둑학과에 진학한다해도 사실 프로기사가 배울 것은 많지 않거든요. 일반대학에 특기생으로 지원해볼까 하는 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이세돌=아직 스무살도 안됐잖아요. 일단은 바둑으로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겠지만, 도전기에 진출해 타이틀을 쟁취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입니다.

●이세돌(李世乭)

1983년 전남 신안군의 외딴 섬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1995년 입단. ‘리틀 조훈현’으로 불릴만큼 발빠른 공격과 타개에 능하다.

올해 첫대국인 1월25일 이후 5월까지 32연승을 기록했으나 조한승4단에 의해 연승기록이 중단됐다. 현재 제34기 왕위전을 비롯해 8개 기전 본선에 진출해 있다.

1997년 제2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6연승을 거두며 본선에 진출, 국제대회 사상 세계 최연소(14세 1개월) 본선진출 기록을 수립했다.

●조한승(趙漢乘)

1982년 서울 출생. 중학 1년 때인 1995년 프로에 입단, 그해 제1기 박카스배천원전과 이듬해 제7기 비씨카드배 배달왕전의 본선에 잇따라 진출하며 주목을 받았다.

포석감각이 뛰어나고 두터우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올 5월 제76회 승단대회에서 신예강호 목진석5단을 꺾고 4단으로 승단, 입단동기인 이세돌보다 한발 앞서 ‘소교’(小巧·간단한 기교를 부릴줄 안다는 뜻으로 4단의 별칭)의 반열에 올랐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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