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에 인색하지 않다. 남의 말도 잘하고 속내도 잘 털어 놓는다. 잘난 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데 연유한다. 같은 민족이라서 그런지 남북정상회담 때 비쳐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모습도 비슷했다. 그는 우리측 누구 하고도 말 나누기를 좋아했고, 답변도 시원시원했다.■김국방위원장의 말과, 속내를 잘 털어놓는 우리 당국자들의 말 탓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상하게 꼬여가는 듯하다. 그가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느니, 노동당 규약을 개정한다고 했다느니 등의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돌고 있다. 이런 문제는 아주 민감하기 그지없는 사안이다. 한술 더떠 김국방위원장의 입을 빌려 가수얘기도 나오고 송이버섯 얘기도 나온다. 은방울자매와 조용필의 이름이 덩달아 오르내린다.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은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인 모양이다. 원래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다. 나무통 속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큰소리로 외쳤다고 하는 동화가 그래서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의 경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행원들은 말을 조심했어야 했다. 어떤 이는 교회가서 얘기하고 어떤 이는 방송에 나가 얘기하고, 그러다 보니 ‘DJ-김정일 대화’내용이 발가벗겨진 꼴이 되었다. 아마도 수행원들의 얘기를 모자이크하면, DJ와 김국방위원장간의 자동차속 대화도 재현해 낼 수 있을 듯싶다. 지금 미국 등 세계는 두사람의 자동차속 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국방위원장은 절대권한을 쥐고 있다. 그는 곧 체제다. 매사 통 크게, 시원시원하게 답변해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대통령은 절대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민주적 시스템에 의해 나라가 움직인다. 어느 때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 사람의 말에 따라, 시스템이 일희일비하는 것은 좋은 대화전략이 못된다. 장사를 하는 데도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남북간의 대화를 장사로 비유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 주판알을 두드린다면 우리는 벌써 이문 남기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입이 가벼워서 좋을 리는 없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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