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노사문제 창구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노동계의 법정근로시간 단축 요구를 ‘조건부 수용’키로 한 것은 환영할만한 자세 전환이다. 현행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주5일제 근무를 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에 무조건 반대해온 것이 이제까지의 재계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경총의 입장 선회는 비록 노동계가 수용하기 어려운 단서들을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적이며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근로시간 단축의 현실여건이나 시대적 당위성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노사가 이 문제를 놓고 대화없이 서로 빗나가게 되는 경우의 불상사를 우려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근로시간 단축여부는 사회적 결단과 합의가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여서 지금부터라도 그에 관한 진지한 논의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본다.
재계의 자세 전환에따라 이제 공은 노동계로 넘어갔다. 진의가 어디에 있든 재계가 기존 입장을 바꿔 대화의 문을 여는 것이 분명한 만큼 노동계가 이에 화답할 차례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엄청난 이슈를 먼저 제기한 노동계로서는 대화와 협상을 적극 주도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경총의 방침이 나오자 마자 “노동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경총이 제시한 전제조건에는 노동계로서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초과근로수당 할증률 인하나 일요일 유급휴무의 무급화 같은 것은 ‘임금삭감없는 실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노동계측의 대원칙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 사실이다.
삶의 질이 좋아질 거라는 허상에 매달려 당장의 실수입 감소를 용인할 수 있는 근로자는 아마도 몇 안될 것이다. 그러나 고용주측의 입장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노동계는 보여야 한다. 고용주측이 이러저러한 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그들로서는 당연한 권리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생산성이 높아져 고용주에게도 결과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노동계측의 주장이나, 이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재계가 이번에 입장을 선회한 것도 생산성 논리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에 눌린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노동계는 자신들의 주장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은 연후에 상대편을 설득해야 한다. 재계도 기왕에 전향적으로 나온 만큼 생산적인 협상자세를 취해야 마땅하다. 조건부 수용의 진짜 의도가 ‘거부’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주5일 근무제는 국가전반의 엄청난 변혁을 의미한다. 서로간에 기존권익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각오와 오랜 협상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먼저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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