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자유1970년대 미국은 세계 경찰로서의 위상을 구체적으로, 강력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력한 권력과 자유를 향한 개인의 의지는 당연히 갈등을 만들어 냈다.
정신병은 때로 뇌의 병리학적 현상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미국 영화에서는 주로 사회와의 갈등이 원인으로 규정돼 왔다.
잭 니컬슨을 연기파 배우로 등극시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의 횡포를 그려낸 수작이었다.
그렇다면 1976년 아카데미 6개 부문을 휩쓴 ‘뻐꾸기…’이후에도 정신병동의 이야기는 유효할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는 그 가능성을 말한다.
권력이 언제나 억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체크(Check)”“체크”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병동 점검의 단어는 그러나 매우 상냥하고 부드럽다.
중요한 것은 양태가 아니다. 그 안에 파고 든 권력의 의미다. 정신병자들에겐 방해받지 않는 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친절하게 약을 먹이고, 잠을 재우지만 그것은 환자의 의지가 아니라 치료자의 의지 중심이다.
잠이 들만 하면 “체크”란 소리에 잠을 깨야 하는 수잔나 케이슨 (위노나 라이더). 아스피린 한통을 삼켜 자살을 기도해 ‘인격경계 혼란장애’라는 판정을 받은 이 소녀는 제 스스로 정신병원 ‘클레이무어’에 입원한다.
정신병동엔 정말 ‘돌아버릴 만큼’ 이상한 친구들 뿐이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튀김 닭만 먹는 ‘대디걸’(브리트니 머피), 얼굴에 난 부스럼을 없애려 제 얼굴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버린 방화범, ‘오즈의 왕국’ 꿈 속에서 빠져 사는 도로시, 그리고 9년째 입원과 탈출을 반복하는 리사(안젤리나 졸리)까지.
‘에일리언4’이후 3년 만에 나타난 위노나 라이더. 수잔나 케이슨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에 주연은 물론 제작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가위손’에서의 맑은 소녀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나, 세월은 깜찍한 얼굴에 신비감만 더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리사 역으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따 낸 안젤리나 졸리는 매우 위협적이다. 병자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는 그러나 내면의 광기로 자신을 갉아 먹는다.
불안과 그것을 퇴치하려는 광기의 안젤리나 졸리는 차분한 위노나 라이더 보다 훨씬 도드라지는 연기를 보인다. ‘뻐꾸기…’의 잭 니컬슨과 흡사하다.
수잔나는 탈출이 아니라 ‘정상 판정’을 받고 퇴원한다. 권력에 대한 도전 보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에 더 가까이 다가선 영화이다.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는 수잔나를 정상적 세상으로 이끄는 조력자. 하지만 모든 영화에서 선인으로만 등장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이젠 좀 신물이 난다. 24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 (★5개 만점, ☆은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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