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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대통령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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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대통령은 피곤하다

입력
2000.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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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도전정신이다. 둘째로 청년정신이다. 셋째가 모험정신이다. ‘벤처’의 본질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의(定義)다.거품이 분명히 있으나, 우리 경제가 회생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벤처의 몫이나 우리 경제가 발전해가는 데 기여해야 할 벤처의 몫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의견에 동감한다.

‘위험도가 높지만 반대급부도 높은(high risk, high return)’ 속성 때문에 벤처는 우리 한국인의 기질에도 꼭 맞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 벤처 1세대들 자신이다. 잘못 오해되면 대박 터뜨리기, 한탕주의 또는 천만달러 짜리 잭팟에도 통하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학자들은 ‘빨리 빨리’ 습성이나 ‘냄비근성’이 말해주는 유목민적 특성이 한국인의 체질에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체질이야 어떻든, 성공한 벤처 1세대들에게서는 도전-청년-모험정신을 발견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불확실한 목표에 대해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의 시작은 지금도 전율을 느낄만큼 비장하게 보이는 부분이다.

“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길을 오셨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김대통령은 그야말로 그의 ‘모든 것’을 걸고 평양에 갔고, 그 도전정신_청년정신_모험정신에 걸맞은 성과를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표현한 ‘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길’은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1주일이 지났어도 김대통령을 여전히 실감나게 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 피곤하다.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단안을 내려달라”는 ‘떼’는 사상 유례없는 ‘폐업’ 시위에 나선 의사들이 내놓은 요구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실제로 의약분업이 초래한 ‘의료대란’은 지금 막무가내로 악화일로를 가는 중이다.

하다못해 자금시장 경색도 대통령의 손짓이 있어야 비로소 풀리는 구조를 지닌 것이 우리 현실인지 모른다. 고액과외 대책도 구조가 비슷하다. 물론, 집권당의 전당대회를 언제 열 것인가도 당총재의 몫이다.

그런 일들을 대신 결정할 사람들, 자리들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대신 결정하고 처리하는 능력도 권위도 보이지 않는다. ‘권위’는 넘겨 줄 수록 ‘권위’를 더한다는 논리는 실증해 볼 기회조차 없다.

너무나 ‘역사적’인 평양 회담의 현장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서울에 돌아와 벌이는 ‘감격시대’적 중구난방 말잔치도 대통령을 더 피곤하게 한다. 가려서 말할 일, 감춰야 마땅한 일, 앞 뒤를 맞춰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얼마나 중대한 ‘국가대사’인가. 정상회담이라고 해서 ‘정상’만 참여하는, ‘정상’만 씨름하는, ‘정상’만 고통스러운 회담이어서는 큰 일이다. 작게는 정부의 팀워크, 크게는 국민의 팀워크가 함께 작동하는 기제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서 결정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무엇들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는데 쏟은 ‘젖먹던 힘’을 새롭게 다 쏟아야 할 일들은 이제 6·15선언의 후속으로 닥친 것들이지 다른 ‘모든 일’이어서는 안된다. 김대통령의 ‘설득’은 미국과 일본을 향해서,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 계속돼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화’와 ‘합의’가 국민과의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민은 ‘평양 2박3일’이 던진 충격과 열광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오랜 냉전체제의 유산이 옭아매고 있는 현실 앞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혼란을 풀어줘야 한다. 가령 국가보안법에 대한 우리 내부의 상반된 시각, 헌법의 영토 개념 등 국체의 문제, 제시되고 있는 통일 방안들에 대한 확실한 이해 등에 대한 총체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 몫 조차 대통령에게 전담시킬 작정인가.

모든 논란과 논쟁은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행인 것은 6·15공동선언이 우리 국민에게 통일을 지향하는 기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 점이고, 두번째의 만남을 약속함으로써 회담의 연속성을 실현한 점이다. 김대통령은 그의 필생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벅찬 감회로 고양되어 있음이 사실이지만, 국민된 눈으로는 그의 피로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정신은 아직 얼마든지 도전-청년-모험에 충만한다 해도, 그의 육신이 직접 나서야만 나라가 비로소 돌아가는 이 체제는 잘못이다.

/본사 주필 정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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