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상황' 주연 주진모"관객들엔 지루해 보일까 걱정"
“만화방에서 옛 애인을 만나는 장면에서요. 원래는 울면서 정사를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저라면 그렇게 정사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너무 슬프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포옹만 했죠”
주진모는 출발이 좋은 배우이다. ‘댄스 댄스’ ‘해피엔드’의 남자 주인공. 드라마 ‘허준’에 밀려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10대 팬들이 많이 생긴 KBS TV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그리고 김갑수와 열연한 신년특집극 ‘슬픈 유혹’. 배역 운이 좋았다.
그가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이 다소 의외다. 그야말로 ‘주류 배우’로 이제 좀 ‘뜨기’ 시작했는데.
“돈 벌면, 정말 뜨면, 이런 작품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주위에서 만류도 많았다.
하루 만에 영화를 찍어 얼마나 잘 나올 수 있겠느냐, 과연 영화의 호흡을 쭉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그러나 배우로서는 더 할 수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도전정신이 강한 만큼 감독과 ‘일합’을 겨룬 장면도 적지않다. 만화방에서 ‘오버’하지 않은 것도, 영화 전반에 나타난 살인의 모습이 지극히 단순하게 드러난 것도 주진모가 따낸 부분이다.
“영화를 하겠다고 결정해 놓고 나니 겁이 더럭 나더라구요. 그러나 개별적인 행위를 연습하기 보다는 그냥 감정만 쌓아 갔어요. 행동이 너무 유연하면 ‘충동’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연극 연습장에서 또 다른 자아와 대면한 ‘나’, 그리고 허둥지둥 현장을 나와 또 다음 살인 대상을 찾아가는 ‘나’, 그가 연기한 ‘나’는 충동적이고 다양하다.
화를 낼 것 같은 장면에 침묵하고, 슬퍼해야 할 분위기에 충동적이다. 그러나 배우는 흥행에 대해 걱정이 많다.
“할리우드 상업영화 구조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상당히 지루해 보일지도 몰라서”이다. 그러나 그는 또 다음 작품을 위해 달릴 수 밖에 없다. 젊음이란 뒤돌아보기 보단 앞으로 달리는 것을 즐겨 하기 때문이다.
3시간 20분 찍고 '완성'
■실제상황
“영화 안으로 들어 오십시요”
‘동물보호구역’ ‘섬’ 등 영화마다 엽기적 정서의 편린을 드러냈던 김기덕 감독. 35㎜카메라 18대, 디지털 카메라 10대, 영화 내내 주인공을 따라 다니는 스테디캠 2대, 그리고 3시간 20분. 영화를 위해 투입된 물량은 이렇다. 이렇게 해서 100분짜리 영화 한 편이 완성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충동’에 관한 한 편의 영화는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훨씬 ‘정상적’ 정서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나. 내면의 또 다른 ‘나’로부터 추궁을 당한 나는 나의 사진을 헐값에 가져다 비싸게 되파는 사진관 주인을 응징하고, 바람 피운 애인을 살해했으며, 나를 고문했던 경찰관, 야비한 군대 상사를 살해한다.
그러나 일련의 사고 후 되돌아 온 나의 자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하다. 과연 그것은 실제상황이었던가.
11개의 시퀀스를 11명의 감독들이 연출하는 방식을 도입한 이 영화는 인간의 내재된 충동을 ‘충동적’방식으로 영화화했다.
영화가 인간의 웅크린 분노를 도발케 했듯, 이 ‘사건’ 같은 영화찍기 역시 관습화된 영화 만들기에 대한 일종의 분노의 표현이다.
인간의 내면을, 감성을 표현하는데 너무나 많은 치장과 돈을 허비한 영화에 대한 이 담담한 반론. 24일 개봉. 오락성 ★★★ 예술성★★★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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