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자의 전화통은 쉴 새가 없다. 의사들의 집단폐업을 비난하는 독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의료대란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시각은 ‘밥그릇 싸움’이 그 본질이라는 것이다.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온 한 의사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피부가 3㎝ 가량 찢어진 환자를 외과의사가 꿰맸을 때 받는 수가는 6,710원이다. 그동안 약값으로 낮은 진료비를 보충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의약분업으로 약을 팔아 벌충하던 밥그릇이 날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98%가 넘는 의사가 똘똘 뭉쳐 진료를 포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밥그릇 싸움만으로 설명하기엔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 지금 사태의 이면에는 의사들의 뿌리 깊은 상실감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매시간 20~30명의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내가 과연 의사인지 회의가 듭니다.”“의대에 들어가 11년동안 공부한 결과가 이 것인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생명을 돌보는 특수한 직업이긴 하지만, 전문적인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는 인정받고 싶습니다.”
의사들의 폐업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병원 앞에 몰려드는 환자를 향해 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비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사들은 결국 환자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의료의 중심에서 소외돼 왔다는 그들의 상실감이 해소되지 않는한 불씨는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그 폐해는 국민에게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진료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합리적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재학생활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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