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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자에게 무슨 죄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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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자에게 무슨 죄가 있나

입력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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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들의 폐업이 사흘째를 맞았다. 지금까지는 전공의 수련의들만 폐업에 참여하고 응급실 중환자실 등은 그런대로 기능을 유지해 혼란이 덜했지만, 23일부터는 의과대학 부속병원 소속 교수들과 전문의들까지 가세하기로 스케줄이 잡혀 있다. 그렇게 되면 의료체계는 완전 마비상태에 빠져 환자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사태를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실정법 규정과 의사의 직업윤리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몇 사람의 희생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 압력을 견디다 못한 정부가 백기를 들고 투항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가. 즉시 집단폐업을 풀고 병원으로 돌아가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환자는 아무 죄가 없다.

겉으로는 팽팽한 대치국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화채널이 재가동될 기미가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3일 의협이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이래 중단됐던 의협과 정부측 대화가 20일 밤부터 물밑에서 다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의협측은 폐업을 철회할 명분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의협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약사법 개정이다. 약사의 임의조제 대체조제 소지가 있어 분업취지가 흐려질 수 있으므로 우선 약사법을 개정한 뒤에 분업을 시행하자는 주장은 얼핏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주장은 7월1일 시행을 연기시키려는 전략과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법 개정은 국회 본회의 의결사항이어서 7월1일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정부와 여당측이 시행 3개월 후 약사법 개정을 포함한 문제점 보완을 약속하고 있으므로, 의료계는 법으로 정해진 7월1일 시행을 수용하고 점진적으로 요구사항을 관철해 나가는 것이 순리다. 최근 정계와 사회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는 분업 연기론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약분업은 의사들과 약사들이 국민 앞에서 7월1일 시행을 약속한 사항이다. 63년 약사법 제정 당시 도입된 제도가 의료계 반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몇차례 시행결정과 연기를 반복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시행하지 못하면 선진적인 이 제도는 다시는 거론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약분업이 국민건강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의협은 다수국민이 지지하는 선(先)시행 후(後)보완 원칙을 받아들여 즉각 폐업을 풀고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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