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존립 목적이 국민의 안녕을 지키는 일이라면, 국민된 도리는 자신의 한 몸을 던져서라도 국가를 지키는 일이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국가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만 한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면, 국가 역시 국민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본분이어야 한다.국군포로를 둘러싼 정부내의 혼란은 그래서 낯 뜨겁다. 부처끼리 다른 목소리로 국군포로가 “북한에 있다” “없다”로 엇갈리는 모습은 여간 볼성 사납지 않다. 지금까지 정부의 견해는 북한에 6·25 때의 국군포로가 상당수 생존해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94년 조창호소위(69)의 북한탈출 귀환을 계기로 국군실종자송환촉구대책위를 설치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국군포로의 존재여부를 둘러싼 부처간 이견이 노출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내에서 통일된 주장이 없다면 이는 정부의 신뢰도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온 열기때문에 혼선이 빚어졌다고 한다면 빨리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잇단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현재 북한에는 신원이 확인된 숫자만 수백명에 이른다.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20일 국회 통외위에서 국군포로에 관해 발언한 내용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부적절하다. 박 장관은 “법적 의미에서 국군포로는 없다”고 했다. 정부의 기존 입장을 뒤집는 발언이다. 탈북 국군포로의 정착을 돕기 위해 99년 ‘국군포로 예우에 관한 법’까지 제정한 정부의 주무장관 발언치고는 앞뒤가 안맞는다.
물론 박 장관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미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고, 포로 가운데는 북쪽에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굳이 북한이 그 존재를 깡그리 부인하는 국제법상의 전쟁포로를 주장하기 보다는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실리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국가가 명분을 쉽게 포기하려 해서는 안된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미국이 미군유해송환을 위해 북한과 끈질긴 협상을 벌이는 것이나, 매년 9월 16일을 ‘전쟁포로·실종자 추념일’로 기념하는 것은 국가가 그 본분을 다하는 모습이다. 국방부는 발표문을 통해 “국군포로 문제는 국가의 본분과 도리에 관한 문제로 국가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갖고 있다”고 박 장관 발언을 반박했다. 당연한 얘기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국가가 기억하는 한, 국민도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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