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폐업이라는 전례가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사회적 비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식을 의사들도 갖고 있다고 전제할 때 의사에 대한 비난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와 책임소재를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근본적으로는 의료라는 인간생활의 필수적인 부문의 대부분을 민간 의료기관에만 의존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 민간 병원들은 생존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이윤추구를 할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정부가 의료보험의 수가를 낮은 수준으로 규제하자 병원들은 보험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고가 진단장비 도입, 지정진료제, 병실료 차액 등 여러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했고 이번에 문제가 된 약가 마진 역시 이 범주에 속하는 방법이었다.
의사들은 한편으로 이러한 비정상적 수익구조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러한 모순 구조에서 이익을 취해왔다. 그런데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은 수입의 감소에 직면하는 한편 비정상적 수익구조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직업적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병원을 우리처럼 민간에만 맡겨 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다수 선진국은 종합병원을 국공립 형태로 운영해 의료시장 전반의 파행을 견제하고 방지하고 있다.
두번째 문제는 의료를 의사라는 전문가들의 문제로만 인식해온 데 기인한다. 의사들은 왜 시민단체 같은 문외한들이 의료에 간섭하는가 불만이 많다. 정부 역시 그동안 의료문제를 의료계 관련자들하고만 논의를 해왔다. 의료는 의사의 처분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었지 감히 국민들이 요구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삶의 질이나 복지라는 차원에서 의료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어떤 의료제도가 우리에게 적합한지, 얼마나 의료비를 내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가 없었고 의사나 의료전문가들의 주장만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의 주장이 설사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하여도 일반 국민들은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세번째 문제는 의료개혁의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의약분업은 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진행되는 의료개혁의 디딤돌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료제도는 의료보험, 의료전달체계, 의사양성제도 등 무수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의약분업만으로는 바람직한 의료제도가 확립되지 않는다. 총체적인 의료개혁 청사진이 먼저 제시되면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의약분업의 실시 자체도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사들의 직업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 기업은 기본적으로 시장거래 방식에 의존한다. 소비자의 기호나 요구에 맞추어야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병원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불편하고, 설명도 잘 안해주며, 불친절한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만큼 의사들이 권위주의적이었다. 의사들은 이것을 잘못된 의료제도의 탓으로 돌리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일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의사들의 폐업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다. 의사들이 이 모든 문제들을 당장에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의사들이 냉정함을 되찾아 진료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더 이상 의료문제를 미봉책으로 대응하지 말아야하고 사회에서도 의료문제를 의사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여기고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조병희 계명대 교수·의료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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