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지난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정책 협의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6%에서 8.5% 정도로 상향조정하고 물가상승률은 3%에서 2.5% 미만으로, 재정적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에서 2.5% 미만으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재정도 2004년에서 2003년으로 1년 앞당겨 균형을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만 국제수지 흑자규모는 예상보다 20억 달러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통해 IMF도 올해내로 졸업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물 경제는 장밋빛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보태 남북경협은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모양으로 자금 시장이 경색돼 큰 일이라고 설설 끓고있다. 상당수 중견 기업이 부도 일보 직전이고 더구나 일부는 흑자도산이 우려된다고 난리들이다. 불과 한달전 만해도 정부는 투신권에 공적자금 5조원을 투입해 문제를 다 해결해놓은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 그동안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라도 떨어졌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금융기관에 새로운 건전성 기준을 적용하는 등 어떤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모두가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또 다시 추가 조치를 취해야한다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백가쟁명식으로 한마디씩 하고있다. 그러나 방법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보다 명확히 하고 거기에 걸맞게 정책 방향이 설정돼야 방법들이 합목적성을 갖게된다고 판단된다.
정부 예상대로 곧 IMF를 졸업하고 위기는 없다는 것이 확실한 것인가. 아니면 위기가 재연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인가. 전자라면 공적자금을 또 조성해 회사채에 대한 수요 기반을 확충시켜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 등 여당 정치인들이 감당할 몫이다. 후자라면 초긴축을 통해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위기를 미연에 방지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자로 가닥을 잡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미 연초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6, 7월 위기의 가능성을 제기했고 저간에도 이런 소문이 과다하게 돌아다녔다. 바로 주가가 이를 반영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실물과 걸맞지 않게 우리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것은 금융위기설을 반영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 의문이 있다. 정말 정부는 모르고 뒤늦게 처방전을 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불가피했는가.
첫째, 정부가 실상을 몰랐을 가능성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정보 부족이고 금융기관의 투명성 결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알고서도 무사안일에 빠졌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위기의 재연은 항상 가능하다. 97년 외환위기도 실물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외국서도 동의하고 있다.
둘째, 알고는 있었지만 불가피했을 가능성이다. 즉 총선을 앞두고,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심스러웠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앞섰을 가능성이다.
뭇 사람들은 어느 게 옳은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위기를 재연시킬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조그만 사건 하나가 확대재생산되거나 조그만 것이 누적돼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실물과 금융은 성장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이다. 어느 한 바퀴라도 절단나면 수레는 주저앉는다는 점을,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치부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상기해주기 바란다.
/한성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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