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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돈맥경화' "네탓" 공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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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돈맥경화' "네탓" 공방만

입력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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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잇단 대책에도 경색된 자금시장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당국 은행권 제2금융권(종금·투신)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네탓’공방만 벌이고 있다.재계 관계자는 21일 “재무구조가 비교적 탄탄한 H그룹이 모은행에 어음할인한도 확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대부분의 은행들이 소수의 대형재벌이외에는 자금지원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신용경색현상이 이처럼 심화하자 정부당국 은행 제2금융권 기업 등 시장관계자들이 “나는 잘하려 하는데 나머지 기관들이 엉망”이라고 삿대질을 하고 있다.

▦이전투구 양상

정부는 물론 투신사, 종금사 그리고 기업까지 나서서 한 목소리로 “은행이 돈을 풀어야한다”며 은행권을 향해 전방위 압박을 펼치고 있다.

최근 정기예금 수신이 급증하는 등 유동성이 넘쳐나는 은행 밖에는 신용경색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다.

투신사 관계자는 “여력이 없는 투신사에 위험도가 높은 기업의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만기연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은행들이 보수적인 자금운용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은행은 “왜 항상 우리만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화살을 정부와 제2금융권, 그리고 기업들에게 돌린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한 임원은 “회사채나 CP 만기연장은 신규발행과 달리 투신사나 종금사에 새로운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며 “기본적인 책임도 다하지 않으면서 은행권에만 손실을 부담하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죄수의 딜레마

모든 금융기관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을 지원한다면 기업들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각 금융기관은 다른 기관이 함께 참여해 줄 지 확신이 서지 않아 서로 나서기를 기피하는 양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최근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이론에 비유한다. 두 명의 죄수가 모두 입을 다물면 무죄지만 한 명만 진실을 밝히면 다른 쪽은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할 경우 후자를 두려워해 두 명 모두 입을 열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은 “솔직히 말해 요즘 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은행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서로 지원을 기피하다 굵직한 기업이 부도나는 상황이 닥칠 경우 공멸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도 곪는다(?)

금융전문가들은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 수익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 수신금리는 지난해 12월 평균 6.19%에서 올 4월 6.28%로 0.09% 포인트 높아졌으나 대출금리는 8.58%에서 8.61%로 0.03% 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특히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국공채 매입에다 콜자금 등으로 운용하면서 역(逆)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연구원 한상일 박사는 “곪아가는 기업들의 지원을 외면하다가 결국 은행들도 함께 곪아가는 꼴”이라며 “주먹구구식 리스크관리와 수익성관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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