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10년간 한반도는 미국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한의 관점에서만 봐도 군사동맹관계로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에 대해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북한은, 특히 1990년대 후반들어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표현되는 노골적인 대미관계 우선정책을 집중적으로 펴 왔다. 주변 강국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소련붕괴 이후 북한과 급격히 소원해졌고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북한에 거리를 두는 정책을 선택, 대북 지렛대를 상실했다. 일본이 한반도 발언권을 위해 나름대로 애썼지만 북한이 깊이 관심을 두는 상대는 되지 못했다.남북정상회담은 이 구도를 급격히 바꾸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퇴조하는 대신 4강의 각축을 초래하는 중대변화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변화 가운데 가장 중시해 봐야 할 정세변화로 미국쪽을 집중적으로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건국이래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관계라는 한미관계의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다. 미국이 만들어 낸 소위 ‘깡패국가(Rogue Countries)’의 선전적 개념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 그리고 이로부터 근거를 삼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라는 국제현안의 중심에 북한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상회담 직후 미국은 분명 충격과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23일 방한할 예정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일정이 당초 중국에만 가려던 계획을 황급히 바꿔 방한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진 데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언론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미국이 겪고 있는 혼란은 이런 식의 짐작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꾸준히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추구해 왔지만 통제불능의 ‘과속’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책의 일정목표가 현실화하자 이 현실이 되레 자신을 위축시키는 부메랑으로 나타난 데 당혹스럽고, 나아가 ‘판단의 아노미’에까지 빠졌던 것 같다.
가령 16일자 뉴욕타임스의 해설기사를 음미해 보면 정상회담 직후 미국관리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이 기사는 남북정상회담 직후 백악관과 국무성 등에서 회담결과를 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한 긴급회의들이 다발적으로 열렸음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미 관리들의 말들은 “도대체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데, 이들은 미국쪽 입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의문들을 직설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변신의 진의, 미사일정책의 포기 여부, 그리고 주한미군의 철수문제 등에 관한 이 의문들은 거침없이 미국중심적이다. 이 중에서도 판단을 고약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 가지는 김정일위원장이 편 계산된 외교력에 관한 것이다. 사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몇 달 사이 실로 현란한 외교행보를 보였다. 이탈리아, 호주 등과 수교를 했고 아세안포럼(ARF) 참여를 보장받았으며, 미국에게는 로마의 북미회담을 전격 제의, 대화의 문을 다시 열었다.
남북정상회담 직전의 중국방문은 그 극치였다. 이런 외교력을 펼치는 국가의 지도자를 어떻게 국제사회의 ‘깡패’라고 계속 손가락질을 할 수 있으며, 이런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국제적 핵규율을 파기하면서까지 NMD가 필요하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 미국관리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며칠만인 19일 미국은 “깡패국가”라는 용어를 스스로 철회했다.
이런 단면들만으로도 미국의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책이 전환의 기로에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급거 방한도 이 지역의 신질서를 현장탐색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신질서로 형성되는 ‘새 기회’에 신속히 동승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반도에서 누렸던 독점적 지위를 앉은 채로 잃을 수 없다는 각오, 또는 시위일 수도 있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외교역량이다. 대미일변도의 사고와 노하우에 젖어 있던 단선적인 우리 외교가 미국의 정책전환과 발을 맞출 수 있을 정도라도 ‘고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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