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조왕건' 궁예‘태조 왕건’. 많은 시청자들은 그 이름 대신 ‘태조 궁예’라고 부를 정도로 궁예에 열광했다.
그의 일생에서 풍기는 비장하고 극적인 면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초야에서부터 ‘미륵정토’라는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극에서 이념적 지도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개 집권 자체를 목표로 하거나 기껏해야 국태민안(國泰民安) 정도의 정치사상을 가진 데 비해 궁에 표방하는 미륵정토는 만인의 평등을 주창하는, 공산주의 못지 않은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그는 명주성 점령 등 권력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일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색을 절대 가까이하지 않고, 몸소 백성들과 똑같은 누더기를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며 군사들과 훈련을 같이 했다.
명주성(강릉) 입성 무렵 궁예의 행동은 분명, 집권 후 ‘민중적 지도자’를 표방하며 백성들을 현혹시키려는 잠깐의 제스처는 아니었다.
이 시기 궁예에게 쏟아졌던 백성들의 흠모는 어쩌면 모택동과 같이 원대한 이상을 갖고 인민과 함께 했던 초기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존경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는 정적 왕건에 대한 인간적 애착을 보이는 등, 사사건건 견제와 의심을 일삼는 모사(謀士)수준은 훌쩍 넘어선 도량까지 지녔다.
이처럼 드라마는 궁예에게 세 영웅중 가장 강력한 대중적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드라마는 귀하게 태어났으면서도, 밑바닥에 버려져 특유의 오기와 기상으로 위업을 이뤄가는 화려한 성공신화부터 시작했다.
시청자들이 성주의 아들이라는 안온한 환경에서 출발하는 왕건, 견훤보다 궁예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시청자들은 때론 역사의 승자보다는 드라마로 부활한 패자의 짧고 강한 삶과 철학에 더 애착을 갖는다.
미륵정토는 그야말로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사회주의 말년의 독재자들처럼 스스로 미륵으로 칭하고 가족까지 처단하는 궁예. 이런 전제적 카리스마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카리스마로 자신을 일으켰지만 결국 그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주저앉은 영웅. 탤런트 김영철의 얼굴에 드러나는 그 영웅의 세상에 대한 분노와 혁명의 열기와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비극적 운명의 그림자와 고뇌에서 시청자들은 역사의 또 다른 진실을 본다. 그것이 ‘태조 왕건’의 힘이고 궁예의 역할이다.
양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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