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센 여자 역할 전문이죠"국회의원 상대 로비스트에서 이제는 백두사업에 뛰어 든 린다김까지. 이영숙(34)의 선은 굵다. 남자 뺨치는 걸물 여인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여자.
4월 ‘돼지비계’에서 매춘부협회 사무국장이자 국회의원 로비스트로 나왔던 그. 극단 민중과의 잦은 작업으로 알고 있던 연출가 정진수씨도 주시했던 화제의 무대였다.
공연 끝날 무렵이던 5월 말, 이영숙은 린다김 출연 제의를 접했다.
연극뿐 아니다. 23일 크랭크 인 하는 ‘그녀’ 역시 심상치 않다.
청와대 뒷편 오두막집에서 사람을 잡아 먹고 사는 어느 기괴한 여인역이다(박경목 감독). 별 다른 성격 지시 없이도 배역에 맞는 성격을 척척 만들어 가는 그에게는 그처럼 우정 출연 제의가 많다.
비록 주역은 아닐지라도, “아, 그 여자!”라는 감탄으로 기억되는 배우.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 온 어느 선배는 “솔잎 향기가 나는 진국”이라고, 평론가 구히서씨는 “자유롭고 거침 없는 연기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대졸 직후인 87년 그는 극단 민중에 입단, ‘아가씨와 건달들’ ‘연인과 타인’ 등에서 주연으로 무대를 주름 잡아왔다.
1993년 민중을 나온 그는 이후 프리랜서 배우로서 ‘뉴욕에 사는 차이나 맨의 하루’ 등 지금까지 16작품에서 당찬 여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접 장르에서의 적잖은 작업에도 불구, 그는 연극을 기본이라고 믿는다. “예술적 격(格)은 연극 무대에서 발견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중 문화가 유행만을 좇다 모호하게 흘러가는 운명이라면, 연극은 가치가 흐려지면 지킬 수 없다는 신념을 자연스레 갖게 됐다.
전북 정읍 출신의 그에게 연극은 잃어버린 소도시적 가치들로 회귀하는 통로였다. “자유, 평화, 맑은 시간들로 돌아가는 길 말예요.” 중2때 부친의 사업으로 서울로 오면서, 한동안 그는 ‘암흑기’와 싸웠다.
꼴찌를 겨우 면했던 그를 구원했던 것은 간간이 접했던 연극무대. 사업부도가 난 부친이 무용 뒷바라지 불가선언을 하자, 그는 신구전문대에 이름만 얹어두고, 하루 10시간씩 교내 연극반 활동에 매달렸다.
1989년 결혼한 그는 연극 관련 일이라면 열일 제치는 습관때문에, 결국 7년 뒤 이혼하고 만다. 현재 극본(제목 미정) 작업 중인 린다 김은 늦가을께 무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1992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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