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답지 못한 얘기겠지만 나는 공상과학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자극 그 자체에 목을 매는 것 같아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러나 ‘쥐라기공원’은 ‘제니의 초상’ ‘만추’ 등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지구에 살았던 가장 거대한 초식동물 중 하나였던 브래키오소로스가 뒷발에 몸을 싣고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뜯는 장면에서 나는 그만 영화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많은 아이들의 성장기에는 이른바 공룡시대가 있다. 우리 꼬마도 세 살적 매일 공룡에 파묻혀 살았다. 그 발음하기도 어려운 공룡 이름들을 줄줄 꿸뿐 아니라 마치 직접 키워보기라도 한 듯 그들의 습성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곤했다. 영화 쥐라기공원에서 평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타조떼 같은 공룡의 이름을 미처 기억해내지 못하던 그랜트 박사도 곁에 서있던 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공룡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을 수 있는가. 아마도 그들에 대한 신비로움 때문일 것이다. 중생대 시절 이 지구를 호령하던 그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년 전 거의 동시에 모두 함께 사라져버린 그 비밀 말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동물들이었을까. 세계 각처에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화석으로 남을 수 있는 몸 부위가 뼈와 알껍질 등 단단하고 썩지 않는 부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기에는 늘 부족하다.
몸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비늘로 덮인 피부로 미루어 공룡을 파충류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라 항온동물인 우리들처럼 음식물에서 생성되는 화학에너지로 몸을 데우는 것이 아니라 양지와 그늘을 옮겨다니며 체온을 조절한다. 만일 브래키오소로스가 변온동물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거대한 몸을 데워 거동하려면 글쎄 저녁 때나 돼야 가능할지 싶은데, 그러면 또 해가 지고 차가운 밤이 올 것이 아닌가. 한번 제대로 움직여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과학자문자로 쥐라기공원 제작에 참여했던 유명한 공룡박사 로버트 베커는 이같은 간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공룡은 항온동물이었다고 주장했다. 척추동물의 뼈 속에는 혈관과 신경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관들이 분포하는데 박물관에 있는 공룡 뼈를 절단해본 결과 그 관들이 파충류보다는 훨씬 빽빽이 들어차 있어 조류나 포유류에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또 심장을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는 공룡화석이 발견되어 그들의 심장이 우리들처럼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악어류를 제외한 모든 파충류와 양서류의 심장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의 몸 속에도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물며 공룡의 몸 속인들 달랐으랴. 최근 화석발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그 옛날 공룡들의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이곳이 이렇게 작은 반도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가 걸어 다니는 이 땅에 그 거대한 동물들이 활보했다 생각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거린다.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