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보기관 책임자를 ‘스파이 두목(Spy Chief)’이라 부른다. 해외로부터는 기밀을 빼오고, 또 우리 것을 빼내려는 스파이는 잡아내는 게 주임무라는 데서 붙여진 닉네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대중 앞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동구(東歐)공산권이 붕괴되기 전 자칭 ‘북방밀사’라는 어떤 사람은 그곳 공산권 고위인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언론에 자랑스럽게 유출시킨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밀사든 스파이든 익명성이 생명이다. 실체가 드러난 ‘스파이’는 이미 정보원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북한 핵의 투명성 문제로 소동이 났을 때 미국의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비밀리에 서울을 찾았다가 우연하게 그를 알아본 국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혔다. 당황한 미국측은 관례를 들어 우리 언론에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CIA 국장은 의회 청문회 등 극히 제한적 일정 외에 대중 앞에 나서거나 취재원이 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임동원 국가정보원 원장이 ‘특별보좌관’으로 수행했다. 정부도 파장을 우려했음인지 방북 당일에야 그 실체를 ‘특보’라고 공개했다. 말하자면 우리의 ‘스파이 두목’이 실체를 드러낸 채 평양을 찾은 셈이다. 그는 햇볕정책의 성안 실무책임자요, 또 김대통령 방북을 위해 평양을 오가면서 북측 핵심라인과 막후에서 업무를 조율했다고 한다. 북측은 사전에 임원장의 수행을 양해했다고 전해진다.
■아직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해 충분한 여론 수렴이 이뤄졌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형식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위 상임위원장까지 ‘공식면담’에서 국보법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대통령은 “국회가 손질을 논의중”이라고 예봉을 피했다지만, 국보법에 대한 입장 정리가 시급하다. 혹시나 임원장의 방북수행이 국보법 개폐에 대한 속내를 북한측에 열어 보인 것은 아닐까.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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