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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가는 농촌 누군가 기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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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가는 농촌 누군가 기록해야"

입력
2000.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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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그래라.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이거여.”

소설가 이문구(59·작가회의 이사장)씨가 7년만에 신작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발행)를 묶어냈다.

‘장X리 XX나무’ 라는 제목들을 단 연작 형식의 소설 8편. 90년대 우리 농촌 현실과 농민의식 변화를 다룬 작품들이다.

장평리 기본바로세우기운동 회장이자 마을 부녀회장인 김학자씨와 도시에 사는 그의 시동생간의 갈등을 축으로 IMF시대의 도·농간 세태를 다룬 최근작 ‘장평리 찔레나무’에서 주인공은 유행가 가사를 빗대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너무도 약삭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가의 말이기도 하다.

충청도 사투리에 담아 배를 잡게 만드는 작가의 익살스런 입담, 풍성한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에 독자들은 책을 덮으며 씁쓸한 웃음 뒤에 현실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유자소전’이후 7년만에 작품집을 냈다.

“다 소설가로서는 직무태만이다. 그래서 새 책에는 서문도 후기도 쓰지 못했다. 나는 게으르면서 문단 후배들이나, 독자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할 형편도 못되는 것이다.”

- 책 제목은 김명인의 시 중에서 빌려온 구절인데.

“그 시 구절이 너무 내 가슴을 쳐서 그 구절로 모든 걸 말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우리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드러낸 것 아닌가.”

- ‘관촌수필’ ‘우리 동네’에 이어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도 여전히 우리 농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관촌수필’이 우리의 전통 농촌, ‘우리 동네’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든 후의 농촌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집은 우루과이라운드, WTO, IMF체제에 휩쓸린 우리 농촌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유심히 지켜본 결과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의 80%가 중국산이다. 농민들도 그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야금야금 점령해가고 있다. 농촌의 음식은 물론 생활구조까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노래방, 핸드폰은 물론이고 논일 나가서도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티켓을 끊어 노닥거리기도 한다.”

- 작가의 실제 체험에 의한 것인가.

“1989년부터 고향인 보령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오가며 지내고 있다.

충남 보령군 청라면 장산리인데 40여 가구다. 그 마을의 막내가 51세 노총각이다. 이렇다면 지금 우리 농촌은 인간의 얼굴을 한 동네가 아니다. 그 현장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농촌을 다룬 문학작품들이 사실상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선 농민들이 안읽는다. 문예지도 반가워하지 않고 출판사도 안팔리니 책을 내고 싶을 리가 없다. 실제 농촌에는 노인들만 살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인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농어촌이 존재하는 한 그 문학도 계속될 것이다.”

- ‘소남풍(少男風)에 개밥그릇 굴러가는 소리 하고 있네’ 등 작품에 나오는 사투리와 입말 표현은 생래적으로 몸에 익은 것인가.

“일부러 그렇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 평범하게 쓰면 싱거워서 이제 달리 쓸 수도 없지만. 문학에서 이런 말과 표현들이 사라지는 것은 곧 우리 언어의 축소이고 죽음이다.

- 작가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욱 바빠질 것 같다.

“통일문학전집은 남북한이 합동 편집위원회를 구성해서 추진했으면 한다. 우선 문예지 간의 작품 교환게재, 출판 교류와 함께 서로의 문학예술 현장에 대한 답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

모르고 사니까 ‘김정일 신드롬’까지 생기는 것 아닌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에는 물건만이 아니고 사람도 봐야 안다는 뜻이 포함된다. 서로 만나봐야 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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