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느낀 생명의 아름다움‘월식(月蝕)’의 시인 김명수(55·사진)씨가 5년만에 신작 시집 ‘아기는 성이 없고’(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발표했다.
‘저기 저 산등성이에 보랏빛 들국화가/ 무리져 피어 있다/ 나는/ 내가 태어나던 그날 그 시각의/ 햇살을 떠올린다’(‘물결’전문)
시집의 서시로 실린 이 시는 ‘태어나던 그날 그 시각의 시선’으로 돌아가 자연과 동심에 비춰 생명현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려는 시인의 뜻을 보여준다.
‘여울물 흐르는 기슭에/ 아지랑이 잔 물살 지으며// 실날 같은 고기들이/ 물살을 거스른다// 아직 세찬 물살 모르는/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 고기들의 첫 헤엄!’(‘여울에서’ 부분). 아직 세파(世波)를 모르는 알에서 갓 깨어난 고기들의 아지랑이 같은 물살의 헤엄. 그 모습을 보고 시인은 ‘저 물살에 어리는/ 네 어린날 꽃신 하나’를 떠올리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김씨는 이번 시집에서 이처럼 우리 주위에서 함께 숨쉬는 작은 생명체들, 강아지 고양이 물고기 새 등에 대한 기억을 통해 천진한 생명의 움직임과 소통하려는 염원을 보여준다.
시 ‘나뭇잎 화석’에는 수억년 전의 나뭇잎 하나가 화석이 된 시간을 거슬러오름으로써 생명이라는 현상의 전체를 꿰뚫어보려는 시인의 시선이 선명하다.
‘나는 숲속의 나무를 생각해본다/ 나뭇잎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숲에 내리던 이슬비도 생각한다/ 옛날, 그 옛날/ 아마도 수억년 전/ 나뭇잎에 어리던 햇살도 떠올린다/…/ 나는 나를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 나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내 그림자가 벽에 비친다’
간결하면서도 선 굵은 시로 독자들에게 넓은 사고의 여백을 제공하는 그의 시의 특장이 이번 시집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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