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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암벽등반 첫 좌절 자존심에 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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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암벽등반 첫 좌절 자존심에 큰 상처

입력
2000.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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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암벽등반 첫 좌절 자존심에 큰 상처1980년대 후반은 내가 한창 산과 바위에 빠져 정신 못차린 시절이었다. 지도와 나침반 하나 달랑 갖고 안 가본 산을 혼자서 찾아간 적도 많았다. 서울의 산들이 온통 내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어떤 등산잡지에 ‘이 코스는 초보자는 안된다’라고 소개돼 있었다. “나는 초보자가 아닌데…” 산친구 10여명과 함께 애써 그곳을 찾았다. 객기, 모험심, 무모함이라 탓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우리들은 그 위험한 바윗길을 거쳐 무려 5시간의 안간힘끝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쉬는 날마다 릿지(암릉)에 오르는 것이 즐거웠다. 혼자서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혼자 가는 산 길은 외롭다. 또한 두렵다. 어려운 바위에서는 정신을 집중시키고 팽팽한 긴장으로 내 몸을 한치의 오차없이 끌어올려야만 했다. 삼각산 원효릿지(원효봉에서 백운대까지의 암릉)도 그런 곳이었다. 사람 하나 만나기 어려운 위험한 바윗길을 혼자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어느해 따가운 여름날 그 코스에 붙어 말바위라는 곳에 이르렀다. 직벽 4∼5㎙를 오르거나 오른쪽으로 돌아 수십m 낭떠러지 위를 기어가거나 해야 올라가게 되는 곳이다. 레이백(바위 틈이나 모서리를 두 손으로 잡고 상체를 끌어당기며 두 발은 벽을 밀어부쳐 올라가는 동작. 손과 발의 힘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하는 것이 특징)을 하면서 여러차례 올라갔었는데 그날은 그것이 되지 않았다. 서너차례 시도해보았는데도 진땀만 흐를 뿐 오를 수가 없었다. 낭패감으로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아, 이래서 세상이 어렵구나” 직벽 레이백을 포기하고 오른쪽 낭떠러지 위 좁은 길을 기어서 올라갔다. 가고자 하는 길을 못가고 우회했으니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였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고 집에 돌아와서도 왠지 화가 났다.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상처입은 자존심이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훗날 이 체험을 ‘부끄러운 등반’이라는 제목의 시로 써서 발표했다.

그날 그 직벽을 오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나의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못한 몸을 만든 책임도 전적으로 나에게 있었다. 이런 후회와 반성속에서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결과가 값진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나의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성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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