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메리카 합중국-지구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7세기의 대서양을 건너 매사추세츠의 플리머드에 내린 1백여명의 청교도들이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로 시작하는 신생활 약정서를 체결했을 때, 뒷날 필그림 교부라고 불리게 될 이 이주(移住)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의 초석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18세기 중엽 대서양 연안의 13개 주로 단출하게 출발한 아메리카 합중국은 그 뒤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까지를 영토로 삼는 대륙 국가가 되었고, 20세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옛 소련과 함께 지구를 경영하는 제국으로 비상했다.
89년 이후 몇 년 사이에 사회주의 체제가 역사의 다락방으로 퇴각하자,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곧 ‘미국의 평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자연스럽게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과 무역 확대에 따른 세계화의 진척으로 미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를 영향권으로 삼는 제국이 되었다.
아니, 세계화가 지구 문명이라는 단일 문명권의 수립을 뜻하고 그 단일 문명권을 느슨한 형태의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미국은 지금 건설되고 있는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재능들이 제국의 수도로 몰렸듯이, 오늘날 전세계의 가장 뛰어난 재능들은 미국으로 몰린다.
언제부터인지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명단은 그 출신이 어디든 미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자크 데리다나 피에르 부르디외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학계에 데뷔하지 않았다면, 그 이름들이 지구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남준이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매겨진 예술사적(藝術史的) 점수는 지금보다 더 박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제국의 건설사가 그렇듯, 미국의 역사는 역동성과 진취성으로 그득 차 있다. 바스티유 감옥의 문을 부순 동력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독립 혁명이었다.
베트남에서 쓴 맛을 보기는 했지만, 미국 군대는 불패의 군대다. 한 재담꾼의 익살에 따르면 미국 군대를 훈련시키는 데 드는 시간은 다른 나라 군대를 훈련시키는 데 드는 시간의 절반 밖에 안되었다.
전진하는 훈련만 시키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척사는 서부에서 멈추지 않고 우주 공간으로 뻗쳐, 달표면에도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이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곳이다. 그 곳에선 인류의 모든 희망과 모든 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엉클 샘의 인격은 모순투성이다.
이민자들의 나라이자 인종의 도가니로서의 미국은 인종주의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도가니에는 아메리카의 원거주자(原居住者)였던 인디언이 배제돼 있고,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이 소외돼 있다.
유럽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다 미국의 주류인 것은 아니다. 최초의 미국땅이 뉴잉글랜드 곧 ‘새로운 영국’이라고 불리듯, 미국의 주류세력은 영국인 곧 앵글로색슨족이고, 그 범위를 넓혀도 고작 북유럽계 이민자들이다.
보수적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삶의 지배 원리로 군림하는 그 곳에 폭력범죄와 마약과 섹스문화가 창궐한다. 미국의 범죄율은 유럽에 비해 열 배가 넘는다. 자본주의적 번영의 심장부인 그 곳에 경제적 소외층이 우글거린다.
가장 가난한 미국인 20%는 이 나라 평균 소득의 4분의 1도 벌지 못하고, 이같은 불평등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4,700만이 넘는 주민이 지금도 사회보장의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 인류에게 닥칠 파국에 대한 담론이 판치면서도, 에너지와 식량의 낭비가 가장 현저한 곳이 미국이다.
서유럽의 폭정을 피해 대서양을 건넌 초기의 미국인들은 당연히 개인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할리우드 영화와 CNN 뉴스와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햄버거로 지구인의 취향을 단일화하고 있다.
사르트르가 지적했듯, 미국의 개인주의는 획일주의와 대립하지 않고, 반대로 그것을 전제로 한다. 자유세계의 지도자, 국민 주권, 민주주의 같은 말은 오래도록 미국의 긍정적 가치를 상징했지만, 이 나라는 또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오랫동안 강력한 군사대국으로서 지상, 해상, 공중 공격을 자유자재로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채, 자국의 이익이 걸려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개입할 것이다.
미국이 영원히 지구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총생산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5년의 40%에서 반 세기 뒤인 1995년에는 25%로 감소했고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2010년이 되면 유럽 연합은 미국의 GDP를 앞지를 것이고 2030년이 되면 중국도 미국보다 GDP가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주변부의 재능을 흡수해서 자신을 갱신하면서 세계의 중심부로 남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건재하다면, 또는 미국이 앞으로 상당 시간 지국제국의 메트로폴리스로 남는다면, 인류는 그가 어디에 살고 있든 이 나라와의 관련을 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주변부 지역민으로서의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색하면서 언제나 미국이라는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친미주의자에게든 반미주의자에게든 미국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지난 세기의 후반기 내내 그랬듯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바로 그 곳에 인류의 모든 문제가 응집돼 있을 것이고, 우리를 포함한 인류의 운명이 바로 그 곳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소설속의 미국과 미국인
유럽이 보는 미국은? 경멸과 선망의 신대륙
미국인의 주류는 유럽의 이민자들이지만, 미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정이 늘 도타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1877)과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미국’(1913, 1927)은 시간적으로 반세기도 안되는 간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 두 소설에서 드러나는 유럽 사람들의 미국관은 꽤 다르다.
제임스의 ‘미국인’은 막 마흔이 된 크리스토퍼 뉴먼이라는 미국인의 파리 생활을 그리고 있다.
뉴먼은 큰 돈을 번 사업가이지만, 어느날 돈과 사업에 염증을 느끼고 결혼과 자기계발을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다.
그는 귀족 출신의 아내를 얻기 위해서 파리의 상류계급에 파고들어 생트레 후작부인이라는 젊은 과부를 만난다.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져 이내 약혼을 하지만, 여자쪽의 가족은 뉴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유럽의 폐쇄적 상류 사회는 미국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파혼에 이른다.
이 소설 속에서는 미국인 뉴먼의 소박함, 관용, 민중성과 프랑스 상류 사회의 거만함, 허례허식이 대비된다.
작가는 물론 뉴먼쪽에 도덕적 승리 판정을 내린다. 이 소설은 19세기까지 유럽의 상류 계급이 미국인들을 바라보며 내보였던 경멸적 태도를 압축하고 있다.
카프카의 ‘미국’은 작가의 다른 많은 소설들이 그렇듯 미완의 작품이다. 앞부분은 카프카의 생전인 1913년에 출판됐고, 작가가 마무리하지 못한 마지막 장을 제외한 전체 텍스트는 카프카가 죽은 지 3년 뒤인 1927년에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출간됐다.
‘미국’은 카를 로스만이라는 독일 젊은이의 모험적인 미국 생활을 그리고 있다. 카를은 부모와의 불화 끝에 자기 삼촌이 사는 미국으로 떠난다.
카프카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이 그렇듯, 카를은 유태적 불안과 정의감이 넘치는 정신적 인물이다. 그는 이내 삼촌 집에서도 뛰쳐나와 자기 혼자서 미국 생활을 헤쳐나간다.
미국은 그에게 그리 살갑지 않다. 그는 엘리베이터 보이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그가 이 낯선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겪는 경험들은 ‘심판’이나 ‘성’에서 K.가 겪는 경험처럼 상징의 옷을 걸친 미로를 연상시킨다.
마침내 카를은 오클라호마의 ‘자연대극장(自然大劇場)’의 안내원으로 취직하면서 안식을 찾는다. 소설은 여기서 중단된다.
막스 브로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카를의 귀향과 부모와의 화해라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카프카의 소설로서는 예외적인 것이다.
그 해피엔딩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작가가 미국에 설정한 극장이다.
이 극장은 개인적 불안들과 모순들이 진정되는 천국의 공간일 것이고, 정의와 연민과 상호 이해 위에 구축된 우주의 극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극장은 카를이 경험한 현실 속의 미국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프카는 바로 이 이상적인 극장을 미국의 한 도시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동경의 한 자락을 드러낸 셈이다. 카프카는 대서양 건너의 대륙을 호의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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