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하구에서 가까운 나진에서 기차로 2-3시간을 달리면 러시아의 연해주 항구도시 나홋카에 닿는다. 여기서 ‘로시야(Rossiya)’라는 특급열차로 갈아타면, 그때부터 1만㎞에 달하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끝없는 초원과 삼림, 광대한 바이칼호수… 시베리아의 장엄한 서사시에 몰입돼 여드레를 지내다 보면 이윽고 종착지 모스크바에 도착하게 된다. 일단 이곳에만 이르면 다음부터는 유럽 어디로나 이어지는 철도 도로 등 육상로가 사통오달이다.■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유라시아대륙을 잇는 어깨선(線)이라면, 그 아래쪽에 허리선도 있다. TSR처럼 직통노선은 아니지만, 중국해안에서 내륙을 관통해 중앙아시아-동유럽-네덜란드까지 1만800㎞가 철도로 이어져 있다. 유라시아대륙횡단철도로 불리는 이 노선은 이미 10년전부터 화물수송 루트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베이징-타슈겐트-테헤란-이스탄불을 잇는 실크로드 철도도 1992년부터 각국별로 건설중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한국-유럽을 왕래해본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사람보다는 오히려 물자와 상품이 이 철로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거나 나가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측에서는 원목 철강 등이, 한국측에서는 전자제품 소비재 등이 TSR에 실린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측이든간에 동해 해상로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운송시간과 비용면에서 큰 이점이 없어 물동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주불특파원 시절, 사무실 벽의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파리에서 육로로 서울까지 가는 길을 그려보곤 했다. 자동차·열차로 마음껏 나라밖을 오가는 유럽인들이 부러웠다. 불현듯 떠오르곤 하던 이런 공상의 뒤끝은 항상 서글펐다. 한국은 땅길로는 갈 수 없는, 섬 아닌 섬이었던 것이다. 남북한간에 철길이 뚫리고 초고속철도가 놓이면 유럽까지 이틀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훈풍에, 잊혀졌던 공상이 되살아 난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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